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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대를 지키는 사람들 – 문화기획자 유모라

홍대를 지키는 사람들 – 문화기획자 유모라

Post Series: 스타카토H피플

 

 

안녕하세요. 문화기획자로 일하고 있는 유모라입니다. 공연, 축제, 전시, 출판, 포럼, 마켓 등을 만듭니다. 요즘에는 마포문화재단과 함께 홍대 앞에서 활동하는 신진 예술가들을 만나서 인터뷰하는 작업을 하고 있어요. 인터뷰하면서 만난 신진 예술가들을 네트워킹하는 파티나 워크숍 같은 프로그램도 만듭니다. 얼마 전에는 한국예술문화위원회가 주최하는 ‘문학주간’의 일부를 맡아 운영했습니다. <스트리트 H>에 칼럼을 연재하고 있고, 마포구의 소식을 전하는 ‘왓해픈드’라는 사이트 운영도 담당하고 있습니다.

문화기획자로 일을 한 10년의 세월 동안 절반은 프리랜서로 또 절반은 조직 구성원으로 일했어요. 홍우주사회적협동조합에서 기획팀장으로 근무하다가 최근에는 다시 프리랜서로 돌아왔습니다. 다시 프리랜서 생활로 돌아가려니 조금 걱정 되더라고요. 안정적으로 들어오는 월급이 없어지니까요. 그런데 지금이 더 바쁜 것 같아요. 들어오는 일들을 거절하는 일도 생기더라고요. 시간이 없어서요. 웃기죠?

 

재미있는 건, 지금 함께 해보자고 들어오는 제안들이 모두 홍대에서 맺은 인연 덕분이라는 거예요. 사실 지금 제가 문화기획 일을 하게 된 것도 홍대에서 만난 사람들 덕분이죠. 20살, 처음 방문한 홍대. 그때 인생의 터닝포인트라고 할 수 있는 두리반에 가며 제 인생의 많은 부분이 달라졌습니다.

 

 

2010년 대학교에서 고 전태일 열사의 어머님인 이소선 님의 강연과 기념 공연이 있었어요. 그 공연에서 만난 뮤지션 회기동 단편선에게 철거농성장 두리반 이야기를 들었어요. 매주 공연이 열리니 와서 공연도 보고 두리반 이야기도 들어달라. 당시에는 철거 농성에 대해 아는 바가 없었고 뒤풀이 자리에서 잠깐 들은 이야기로는 마음이 동하지가 않아 갈 생각이 전혀 없었어요. 그래도 매주 두리반에서 열리는 공연 소식을 알리는 문자를 보고 한 번쯤은 가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어 방문했죠.

 

홍대입구역에서 내려서 8번 출구로 나가서 길을 따라 걸어가니 회색 펜스가 줄지어 서 있고 그 끝에 좁고 삐그덕거리는 문이 있었어요. 8평도 안 되어 보이는 공간에 사람들이 옹기종기 모여 있었어요. 무대도 없는 곳에서 누군가가 공연하고 있더라고요. 그때 공연을 하던 사람이, 아마 아마추어증폭기였던 것 같아요. 무대도 그렇고, 공간도 그렇고, 노래도 노래다운 노래가 아니었는데 거기 있는 사람들이 굉장히 따뜻한 시선으로 그를 바라보면서 열심히 박수를 치면서 공연을 보더라고요. 그때 제 마음이 동했어요. 그 공간을 가득 채우는 따뜻한 환대의 분위기에 말이죠.

 

객석에 앉아 있었는데 사회자가 갑자기 저 뒤에 앉아 있는 여성분들은 어떻게 온 거냐고 묻는 거예요. 그래서 친구와 마이크를 잡고 자기소개를 했어요. 노래도 하라고 해서 나가서 노래도 했어요. 아주 열심히요. 근데 나중에 알고 보니까 저희가 아니라 제 뒤에 있는 분께 물어본 거였더라고요. 사회 본 사람과 친구였대요. 그 다음은 뭐 맨날 가서 술 마시고 놀다가, 차가 끊겨서 거기서 자고, 일어나보니 학교 갈 시간이 한참 지나서 수업에 빠지고 거기서 또 술 마시고 그랬어요. 가만히 앉아 있으면 인디밴드도 오고 영화감독도 오고 시인도 오고 활동가도 왔어요. 다들 그냥 오는 게 아니라 이것저것 먹을 것도 사오고 술과 담배도 사오고 해서 그냥 전 앉아서 사람들과 어울리고 놀았어요. 그게 너무 재미있었죠. 그렇게 두리반에 온 사람들과 친구가 되었죠.

 

두리반에 가기 전에는 인디밴드라고 하면 언니네 이발관, 브로콜리너마저, 요조, 소규모아카시아밴드가 다인 줄 알았는데 두리반에 가보니 한받도 있고 단편선도 있고 복태와한군도 있고 밤섬해적단도 있더라고요. 그리고 그들이 인디씬을 만드는 사람들이란 걸 알았어요. 그런데 이들은 어떻게 돈을 벌까요. 그게 궁금하더라고요. 그래서 물어봤죠. 어떻게 돈을 버냐고, 공연을 하면 페이를 받느냐고요. 근데 공연을 해도 페이를 못 받는다는 거예요. 공연장 월세가 너무 비싸서 관객들이 내는 티켓 값으로는 자기들의 페이를 줄 수 없다는 거예요. 그때 깨달았어요. 이렇게 쫓겨나는 문제가 두리반만의 문제가 아니구나.

 

쫓겨나는 건 칼국수 집만이 아니었어요. 공연장도, 미술관도, 작업실도, 내가 살고 있는 집도 어느 날 갑자기 쫓겨날 수가 있는 거예요. 우리 모두 같은 문제에 놓여 있는 거예요. 그래서 사람들이 이렇게 두리반에 와서 연대를 하는구나 싶더라고요.

그리고 이제는 친구가 된 나의 동료 뮤지션들이 더 이상 쫓기듯 그들의 삶을 살지 않았으면 하는 바람이 들었어요. 그러려면 아티스트 작업에 적당한 페이를 지불하는 사람이 필요하다고 생각했고, 그 일을 내가 해볼까 싶었어요. 지금 말하고 보면 어려운 일인데 그 때는 가벼운 마음으로 시작했어요. 기획 일을 전혀 몰랐기 때문에 처음엔 별 게 아니었어요. 지금은 누가 문화기획자로서 먹고 살아도 되겠냐고 묻는다면 대답하기 어려울 것 같아요.

 

 

10년 전에 어떻게 아티스트에게 페이를 주는 일을 시작했는가 돌이켜보면 그때 다른 집회나 축제에서 누굴 좀 섭외해달라고 연락이 자주 오곤 했어요. 그럴 때마다 대신 섭외를 해줬는데 페이가 얼마인지 꼭 대신 물어봤어요. 아티스트마다 그런 걸 묻는 걸 어려워하는 사람들이 많아요. 정확히 언제 페이를 입금해주는지, 공연에 필요한 장비는 있는지, 행사 취지는 무엇인지, 자세한 타임테이블은 어떻게 되는지 등을 확인하고 소개해줘도 괜찮겠다 싶으면 그때 서로를 연결시켜줬죠. 지금 생각해보면 매니지먼트 회사에서 해주는 일을 했더라고요. 물론 지금도 많은 사람들이 사진가, 영상작가, 디자이너, 밴드, 기획자, 행사 안내 알바 등 구인 문의를 해요. 그래서 ‘모라 인력소’라는 타이틀도 달았어요.

 

처음으로 예산이 있는 프로젝트를 진행한 건 2011년에 1년 정도 남산타워에서 공연 기획을 한 거예요. 사실 그 프로젝트는 예산이 작아서 제 기획비를 가져갈 수 없었어요. 안 할 수도 있었는데 좋은 기회란 생각이 들더라고요. 제가 기획한 공연으로 동료 예술가들이 공연비를 받아갈 수 있었으니까요. 힘들었지만 그래도 잘 한 선택이구나 하고 느꼈던 순간이 있어요. 몇 년 전, 복태와한군의 공연에 갔는데 무대에서 이런 말을 하더라고요. “우리 부부가 처음으로 페이를 받았던 공연이 있다. 남산타워에서 한 공연인데 그때 기획자인 유모라 씨가 저기 앉아 있다. 그 공연 덕분에 아기 기저귀 값을 마련했다. 그 이후로 개런티 있는 공연 섭외가 들어왔고, 공연을 하면 돈을 받아야 한다는 감각을 익혔다.” 정말 뿌듯하고 보람을 느꼈어요. 그동안 잘해왔구나 싶더라고요.

 

뭐 늘 좋은 일만 있었던 건 아니에요. 말도 안 되는 구설수에 올라간 적도 있고요. 홍대라는 지역에 환멸을 느꼈던 적도 있고, 이 동네를 떠나고 싶다고 생각한 적도 있어요. 2년 전에 마포구가 홍대 관광특구 지정 계획을 발표한 적이 있었어요. 그걸 막기 위해서 홍대 앞 예술가, 공간 운영자, 활동가들과 대책위원회를 만들고 관광특구 지정을 막아냈는데요. 결과는 성공이었지만 과정을 겪으며 제가 너무 나약하고 먼지보다 못한 존재로 느껴졌어요. 내가 아무리 나의 속도로 산다 한들 도시의 거대한 흐름을 거스를 수는 없구나, 휩쓸려가는 건 한순간이구나 싶었어요. 무섭고 숨 막히고 답답하고 미래가 보이지 않는 거예요. 친구들도 하나 둘 떠나고, 내가 좋아하는 장소들도 다 문을 닫고 떠나는데 나는 뭘 바라고 이 동네를 지키고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그래서 어디로 가면 좋을지 아주 구체적으로 생각해보았어요. 제주도에서 살고 있을 내 모습, 정릉에 살고 있을 내 모습을 떠올려봤는데 심심하더라고요. 거긴 친구들이 없잖아요. 오늘도 인터뷰 하러 오면서 길에서 우연히 친구를 만났어요. 전 이게 너무 좋아요. 길을 가다가 우연히 아는 사람을 만나고 반갑게 인사를 할 수 있는. 이런 건 하루아침에 되는 게 아니죠. 시간이 쌓여야 가능한 거죠.

 

왜 아직도 홍대에 남아 있냐고, 힘들지 않느냐는 질문을 종종 받아요. 그럴 때마다 전 한결같이 대답해요. 홍대를 떠났던 사람들이 이곳으로 돌아오고 싶을 때 언제든지 돌아올 수 있는 곳이었으면 좋겠다고. 떠날 때는 그럴 수밖에 없는 이유가 있었을 거예요. 그런데 돌아오고 싶을 때엔 그럴 수 있는 조건이 되었으면 좋겠어요. 그들이 그리워했던 홍대가 여전히 그대로였으면 좋겠어요. 또 그들을 반겨줄 사람이 있었으면 좋겠어요. 비행술, 라이브클럽 쌤, 아로마포차, 씨클라우드, 블루스하우스, 오백, 며느리밥풀꽃… 제가 너무 아끼던 공간들이에요. 그곳에 모이는 사람들, 분위기, 추억들이 아직도 생생해요. 그들이 언제든지 다시 돌아올 수 있는 홍대였으면 좋겠어요. 그러려면 저 같은 사람들이 계속 홍대를 지키고 있어야 하지 않을까요.

 

 

<나에게 영감이 되는 무엇>

 

《교토의 정원》

책을 많이 읽는 편은 아니지만 최근에 보고 정말 좋았던 책이다. 저자가 교토를 수십 번 방문을 하면서 찍었던 사진과 그동안 연구했던 정원에 대한 정보를 담은 책인데 한 장 한 장 넘겨보다 보면 마치 정원 안에 앉아 있는 기분이 든다. 힐링하는 기분이라고 할까. 이런 주거문화 속에서 사는 사람들은 어떤 삶을 살고 있을까 궁금해진다. 나는 너무 홍대에만 있다. 홍대에서 일하고 홍대에서 논다. 심지어 사는 곳도 홍대다. 최근에는 매일 보는 홍대에서 벗어나 새로운 공간에서 자극을 받고 싶은데 이 책을 보면 그런 자극을 받는다.

 

<릴리즈 바>

일주일에 하루 이상은 내가 좋아하는 바에서 좋아하는 위스키를 두세 잔 마시는 것이 내 일상의 즐거움이다. 릴리즈 바는 내가 자주 가는, 정말 좋아하는 바다. 주택을 개조해 만든 곳이라 구조가 굉장히 특이하고 재미있다. 아늑하고 감각적이다. 손님들과 가게 주인이 직접 그린 그림이 널려 있고, 좋은 음악이 흘러나온다. 마치 유럽에 있을 법한 아틀리에 같다고 할까. 가만히 바에 앉아 있으면 일 마친 사람들이 하나둘 몰려와 옹기종기 바 주변에 앉아 이야기를 나눈다. 오늘은 어땠는지, 지금 하고 있는 작업은 잘 되고 있는지 말이다. 이런 대화와 만남이 내게 큰 영감이 된다.

 

<안티카페 손과얼굴>

재미있는 실험들이 많이 펼쳐지는 곳이다. 그 실험이 궁금해 기웃거리는 사람들과 그들을 언제든지 환영해주는 주인이 있다. 나도 여기서 글쓰기 모임을 운영하고 있다. 홍대 카페 인테리어 문화에 곰팡이 포자처럼 퍼진 하얀 바닥과 벽, 쨍한 조명, 각 잡힌 테이블과 의자가 이곳에는 없다. 돈이 없어서 공간을 꾸미느라 오래 걸렸다고 말하는 주인의 손끝을 거친 소품들이 한데 모여 독특한 매력을 뽐낸다. 최근에 성수동에 가서 이질감을 느끼고 왔다. 넓은 공간과 높은 층고, 가격을 물어보지 않아도 비쌀 것 같은 새 가구들, 선반에 꽃혀 있지만 아무도 읽지 않는 힙한 잡지들. 예쁜 카페, 편집숍, 펍으로 중무장한 곳을 방문하며 내가 비집고 들어갈 틈은 보이지 않았다. 그곳에서 할 수 있는 건 그저 커피와 브런치를 사먹고 사진을 찍어서 인스타그램에 올리는 것이었다. 그러나 안티카페 손과얼굴은 누군가가 들어갈 여지가 있는 공간이다. 여기에선 뭔가를 해볼 수 있다. 또 뭔가를 해보고 싶은 사람들과 사귈 수도 있다. 이런 공간들이 홍대를 홍대답게 만든다. 홍대에서 없어지면 안 될, 정말 중요한 장소다.

 

<회기동 단편선>

두리반을 거쳐간 예술가, 활동가들은 모두 대단하다. 단편선은 그 중에서도 제일 본받을 만한 사람이라고 생각한다. 내가 우연히 두리반에 흘러들어간 케이스라면 단편선은 그곳의 이슈에 동의하고 연대하려는 주체적 선택으로 두리반에 갔다. 정치적 목소리를 내면서 음악 활동을 하는 뮤지션들은 많지만 그 중에서 단편선은 음악적으로도 가장 성공했다고 생각한다. 자신의 음악적 한계를 극복하고 계속 새로운 것을 선보이는 그를 보면서 반성한다. 단편선은 음악만 잘 만드는 게 아니라 자신의 음악을 어떻게 활용하고 비즈니스적으로 풀어낼 것인지 궁리하는 사람이다. 막역한 친구처럼 지내지만 자극을 많이 받는다. 할아버지, 할머니가 되더라도 지금처럼 아웅다웅 하면서 동네 친구로 지내고 싶다.

 

<영화 그랑블루>

이런 말을 하면 웃기겠지만 나는 하고 싶은 게 없는 사람이다. 그냥 흘러가는 대로 흘러왔을 뿐이다. 그러나 이 영화 속 주인공 자크는 바다와 고래에 대한 집착적인 사랑, 열정이 있다. 그로 인해 자기 아이를 가진 애인의 곁을 지키지 못하는 사건도 발생한다. 자크를 미치게 하는 건 무엇일까. 나도 그렇게 몰두하고 빠져들고 집착하고 갈망하는 걸 찾고 싶다.

 

 

글_임은선 스트리트H 에디터

사진_신병곤 포토그래퍼

기획_STACCATO 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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