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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로운 자극을 찾아서 – 정지현 북디자이너

새로운 자극을 찾아서 – 정지현 북디자이너

Post Series: 스타카토H피플

 

 

안녕하세요. 저는 15년차 북디자이너 정지현입니다. 올해 1월, 독립해서 프리랜서가 되었어요. 북디자이너로 일한 지 15년, 심지어 한 출판사에서 10년이나 일했더라고요. 많은 분들이 ‘왜 안정적인 직장에서 나왔느냐“고 질문하셨어요. 저는 디자이너에게 주어진 환경에 안주하는 것만큼 경계해야 하는 건 없다고 생각해요. 디자이너는 새로운 감각을 만드는 사람들이잖아요. 다양한 자극과 고민 속에서 살아야 하는데, 정신 차려보니 저도 한 곳에서 10년이나 머물렀더라고요. 물론 ‘책’을 만든다는 게 늘 새로운 도전거리를 주는 일이라서 굳이 퇴사를 하지 않아도 되지 않을까 싶기도 했지만 계속 같은 곳에 있으면 지금 다니는 회사에만 맞는 일을 하는 사람이 될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이 커지더라고요. 알려진 직장명을 앞에 둔 정지현이 아닌 오롯이 디자이너 정지현으로 검증받고 싶다는 생각도 들었고요. 또 만약에 독립을 할 거라면, 조금이라도 어릴 때 하는 것이 심적으로 더 쉽지 않을까 싶었던 거죠. 한 마흔쯤 되면 독립할 줄 알았는데 생각보다 그 시기가 당겨진 것뿐이에요.

 

퇴사하고 나니 지금 상황에 만족하느냐고, 어떠냐고 묻는 사람이 많아요. 저도 처음엔 “바깥은 지옥이에요”라고 말하게 되지 않을까 했어요. 그런데 의외로 저는 지금 상황에 아주 만족하고 있는 것 같아요. 상황의 변화 자체를 심각하게 생각하지 않아서 일지도 모르겠지만요.(웃음) 직장인들이 겪는 괴로움은 여러 종류가 있잖아요. 일 자체나 인간관계에서 오는 괴로움 등 다양할 텐데, 회사를 다녔을 때 나의 괴로움이 무엇이었는지 최근에 정확히 알게 되었어요. 책의 디자인이 완성되기까지는 여러 차례의 수정이 있어요. 예전의 저는 단순히 누군가의 디렉팅에 맞춰 일하는 게 괴로웠던 건가 싶었는데, 독립하고 보니 그게 아니었어요. 지금 다양한 클라이언트들과 일하면서 여전히 수정 요청을 듣게 되는데요, 그 요구가 그렇게 크게 스트레스로 오지 않았어요. 왜냐하면 그건 지금까지 제가 받아본 적 없는 방향의 요구였던 거예요. 다른 의미의 시도였던 셈이죠. 그 요구들을 제 나름의 디자인으로 해결하는 과정이 생각지 못한 성취감을 주더라고요. 그래서 독립한 지금은, 제가 얼마나 더 성장할 수 있는지 실험해보는 시간이란 생각이 들어요. 하나씩 돌을 놓고 있는 중 같아요. 앞으로 주어질 길을 더 잘 건너가기 위한 징검다리요.

 

제게 성장은 늘 중요한 목표예요. 어제보다 조금 더 나은 디자이너가 되는 것, 그래서 최소 60살까지 활동하는 현역 디자이너가 되는 것, 그게 지금의 제 목표예요. 생각만 해도 두근거려요. 그러려면 ‘나’라는 사람의 철학과 중심을 지키며, 시시각각 바뀌는 트렌드에도 늘 관심을 기울여야겠죠?

 

 

안 해본 것을 시도하는 것에 즐거움을 느껴요. 안 먹어본 음식 먹어보는 걸 좋아하고, 한 번도 안 가본 새로운 곳으로 여행가는 걸 선호하죠. 절 움직이는 건 지금까지 안 해본 새로운 시도들이고요. 그래서 조금은 디자이너라는 직업과는 상관없어 보이는 번외 활동들을 많이 하는 건지도 모르겠어요.

 

여행하며 모았던 종이들을 모아 개인 이벤트를 한 적이 있어요.  ‘찌라시 상점’이라는 팝업스토어를 열었죠.(http://naver.me/GIv3MtrX). 여행을 가면 거의 대부분의 시간을 미술관에 가거나 아트페어에 참석하는데 쓰는데, 캐리어 한 가득 행사 홍보 종이를 담아 와요. 그 모든 것이 동시대를 살아가는 다른 나라 디자이너들의 작업이고, 저에게는 놓칠 수 없는 좋은 레퍼런스가 되니까요. 그렇게 모은 종이들이 작은 방을 가득 채울 정도가 되니 도저히 감당이 안 되더라고요. 이렇게 모아둔 걸 혼자 보기가 아깝기도 했고요. 그래서 그 종이들을 도시별로 묶어서 전시도 하고 500원, 1000원씩 가격을 붙여 팔았어요. 베를린과 도쿄를 주제로 두 번 열었는데, 사실은 다시는 하지 말아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제 눈에 좋아 보이는 건 남들 눈에도 좋아 보여서, 제발 안 팔렸으면! 하는 것들이 다 팔렸거든요. 속으로 엉엉 울었어요.(웃음)

 

또 저의 집에 낯선 사람들을 초대하는 ‘남의집 프로젝트’에 호스트로 참여한 적도 있어요. 다른 프로젝트에 놀러갔다가 ‘하는 일을 소개해달라’는 호스트 제안을 받았거든요. 사람들은 북디자이너가 어떤 일을 하는지 잘 몰라요. 그래서 궁금해하는 사람들도 많죠. 그런 사람들을 저의 집에 초대해서 함께 제 작업에 대해, 북디자이너의 일에 대해 이야기 나누고 취향을 공유하는 자리를 마련했어요. 그게 재미있어서 ‘남의집 만화방’이란 프로젝트도 진행했어요. 집에 쟁여둔 만화책이 몇 백 권 되거든요. 남의집 프로젝트의 다른 연장선으로 제 집에서 만화방을 열었죠. 진짜 만화방처럼 떡볶이도 드렸답니다.

 

 

미술만큼, 아니 미술보다 더 사랑하는 게 음악인데요. 아침에 일어나서 잠들 때까지 늘 음악을 들어요. 그런데 음악을 듣는 방식이 좀 아날로그해요. 저는 아직도 CD를 사서 듣는 사람이죠. CD를 사서 비닐을 뜯고 그 속의 아트워크를 보고 가사를 읽어보고 하는 일련의 과정이 제게는 모두 다른 류의 경험인데, 이런 느린 시간의 미학을 즐기는 사람들이 많지 않아 좀 아쉬워요. 그래서 기획했던 ‘음악살롱’이 있어요. 자신이 어렸을 때 들었던 노래의 실물 음반(카세트테이프나 CD, LP)을 가져와서 함께 듣고, 지금 듣는 음악을 지금의 방식대로 함께 듣고 이야기하는 프로그램이었죠. 각자 음악을 즐겼던 시대나 나이대는 모두 다 달랐지만 나눌 수 있는 이야기가 정말 많더라고요. 내가 좋아하는 취미로 타인과의 연결을 시도해 본 작업이라 색다른 의미가 있었어요.

 

전 이런 새로운 경험들이 제가 하는 일에 혹은 제 인생에 긍정적인 영향을 줄 거라고 생각해요. 자기만의 중심을 잃지 않아야 하는 디자이너에게 중요한 건 지금 시대의 흐름을 읽고 감각하는 거 아닐까요. 그걸 경험하고 해석하는 것은, 그런 고민을 쌓아가는 것은 더욱 중요하고요. 그런 의미에서 저는 지금 제가 사는 이곳이 좋아요. 홍대 근처에서 10년 넘게 살았는데요, 평생 이 근처에서 살고 싶어요.(웃음) 이 동네만큼 여전히 새로운 시도들이 넘쳐나는 지역이 많지는 않으니까요. 평생 홍대 근처에서 살고 싶은 마음이, 오-래 작업하는 디자이너가 되고 싶다는 다짐만큼 중요한 부분 같아요. 그리고 제가 아끼는 홍대가 여전히 새로운 자극을 주고 새로운 경험을 하게 하는 동네였으면 좋겠어요. 저 역시도 누군가에게 새로운 자극을 주는 사람이라면 더할 나위 없을 것 같다는 생각을 하고요. 우리 더 재미있는 일로 다시 만나요!

 

 

<내게 영감이 되는 무엇>

 

한강

산책과 자전거 타기를 좋아하는 나는 날이 좋으면 무조건 한강을 떠올린다. 물론 스트레스가 쌓여 있을 때도 마찬가지다. 음악을 듣거나 만화책을 보는 것, 혹은 영화를 보는 것들은 즐거움을 주지만 나의 스트레스까지 풀어주지는 않는다. 그럴 때 몸이 저절로 이끄는 곳, 숨어드는 곳, 한강에서 보내는 시간이 나를 정화시킨다. 홍대 일대에서 유일하게 만날 수 있는 큰 자연이자 탁 트여 있는 곳. 다리 아픈 줄도 모르고 한참을 걷다 보면 어느새 스트레스가 풀리고 생각이 정리되는 것을 느낀다. 한강 갈 때 마음이 다르고 올 때 마음이 다르다.(웃음) 홍대 인근에서 조금만 걸어가도 한강을 만날 수 있다는 건 정말 행운같은 일이다.

 

가보지 않은 도시

나의 원동력은 무엇이냐고 묻는다면, 단연코 호기심이다. 특히 여행을 좋아하는 내게 ‘아직 가보지 않은 도시’만큼 호기심을 자극하는 곳은 없다. 그곳에서 마주한 수많은 것들이 내게 큰 자극이 되고 영감이 된다. 여담이지만 내가 유일하게 보지 못하는 게 있는데 바로 여행 다큐멘터리나 여행책이다. 이미 다녀 온 곳이라면 너무 그리워서, 가보지 않은 곳이라면 나도 가고 싶으니까 배가 아파서다. 약간 정복자 같은 심술이 있는 것 같다.(웃음)

 

책 《이제껏 배운 그래픽 디자인 규칙은 다 잊어라. 이 책에 실린 것까지.》

내가 디자인한 책도 아닌데 정말 주변에 영업을 많이 했다. 일일이 보여주고 카톡으로 구매 링크도 넘기고 누가 보면 지분 있는 줄 알았을 거다. 기획 일을 하거나 디자이너인 친구들에게 반드시 읽어보라고 추천한 책이다. 선물도 많이 했다. 어디에서 영감을 얻고 그걸 어떤 식으로 발전시켜, 뽑아져 나온 결과물이 무엇인지 보여주는 책인 동시에 전혀 생각하지 못한 허를 찔러주는 책. 정말 호모사피엔스라면 다 읽어야 한다고 강력 주장하는 바이다.

 

피카소의 드로잉 작품들 

사실 나는 피카소를 좋아하지 않‘았’다. 얼굴을 비튼다거나 색을 화려하게 쓰거나 하는, 큐비즘 식의 작업을 좋아하지 않기 때문이다. 11년 전, 파리 여행을 처음 갔을 때 피카소 미술관을 방문했는데, 그때만 해도 파리까지 왔는데 안 갈 순 없으니 간다는 마음이 컸다. 1층을 관람하고, 2층에 올라가 작은 방에 전시된 작은 드로잉 작품들을 보다가 한참을 그 앞에서 엉엉 울었다. 침대 위에 잠든 여자가 있고 미노타우로스(반인반수)가 말없이 여자를 바라보는 그림이었는데, 그냥 그 그림을 보는 순간 가슴이 찢어질 듯 아팠다. 표현하기 어려운 외로운 감정이 느껴졌다. 그림 앞에 서서 엉엉 울면서도 내가 지금 왜 울지??? 해결 안 된 물음표가 가득한 상태로 다른 방에 들어섰는데, 그 방에서 그가 정말 천재임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었다. 늘 아이처럼 그림을 그려야 한다고 말한 사람, 그 자유로운 의지의 선을 보면서, 갇히는 것 두려운 것 없이 그림을 그렸겠다 싶었다. 그 이후부터 피카소 드로잉북을 많이 사 모았고, 어느새 피카소의 팬이 되었다. 이 일은 내게 아주 중요한 경험으로 남아있다. 무언가에 대한 편견 혹은 고정관념을 깨게 된 사건이기 때문이다. 고작 알려진 몇 작품만을 보고 한 사람의 작업을(혹은 일생을) 함부로 판단하다니. 그 이후부터는 예술을 감상할 때, 혹은 무언가를 진심으로 알고 싶을 땐, 적어도 그 이의 전작과 이후의 작품까지 봐야 한다고 생각하게 되었으니까. 예술뿐만 아니라 무언가를(어쩌면 사람) 대하는 태도를 반성하게 하고 새로운 자세를 만들어준 일화이기에 이야기하고 싶다.

 

 

글_임은선 스트리트H 에디터

사진_신병곤 포토그래퍼

기획_STACCATO H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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