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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좀 더 넓게, 좀 더 촘촘하게 연결되어야 한다 – 빌라선샤인 대표 홍진아

우리는 좀 더 넓게, 좀 더 촘촘하게 연결되어야 한다 – 빌라선샤인 대표 홍진아

Post Series: 스타카토H피플

 

 

일하는 밀레니얼 여성들의 커뮤니티, 빌라선샤인 대표 홍진아입니다. 대표가 되기 전에 저는 글로벌 비영리조직, 공공기관, 스타트업 등에서 기획과 홍보, 미디어커뮤니케이션을 담당하는 일을 했고, 2017년 3월부터 1년 1개월 동안 두 개의 조직에서 일하며 여러 가지 프로젝트를 하는 N잡 실험을 했습니다. 투잡, 쓰리잡이 아니라 내 일을 내가 기획하고 내 일에 이름을 붙이며 일한다는 의미에서 저 스스로를 N잡러라고 불렀죠. 지금은 직장이 하나지만, 어떤 의미에서는 지금도 N잡러의 연장선상에 있다고 생각해요. 여전히 여러 일들을 스스로 기획하고 이름 붙여가며 일하고 있으니까요.

 

어쩌다 보니 이렇게 창업을 하게 되었는데, 사실 마지막까지 고민이 많았어요. 저는 뭔가를 시작할 때 고민을 많이 하는 편이 아니에요. 할 수 있는 일이라면 작게라도 돌려보면서 가능성을 확인해보고, 할 수 없는 일이라고 하면 빠르게 정리하는 편이죠. 그런데 유독 이 일은 오래도록 고민했습니다. 저는 제가 열심히 일해서 그만큼의 월급을 받는 것의 가치를 알고 그걸 통해 내가 하고 싶은 일들을 하는, 회사에서 일하는 나와 회사 밖에서 일하는 나 사이에서 균형을 잘 잡고 있는 사람이라고 생각해왔습니다. 동시에 이런 제 삶에 굉장히 만족하며 살아왔고요. 그런데 그 경계가 없어지는 일이니 두려웠던 게 사실입니다. 그러나 여러 일들이 지금의 선택을 하도록 만들었습니다.

 

 

2015년부터 약 2년 반 정도 ‘와일드 블랭크 프로젝트’라는 프로젝트를 진행했습니다. 한 남자 개그맨이 방송에 나와 여자들이 설치고 떠들고 말하고 생각하는 게 싫다며 화를 내는 장면을 보면서, 왜 저런 말을 아무런 부끄러움 없이 할 수 있는지, 왜 저런 말이 공공연하게 방송에 나오는지 의아했습니다. 그리고 화가 났어요. 그래서 우리는 좀 더 설치고 말하고 생각해도 된다는 의미를 담아 여러 굿즈를 만들어 판매했습니다. 이 프로젝트를 처음 시작했을 때만 해도 이런 느슨한 연대만으로도 충분하다고 생각했습니다. 같은 문구가 적힌 굿즈를 사용하면서 서로를 확인하는 것, 굿즈 판매를 통해 발생한 수익금을 여성단체에 기부하는 것으로 여성단체를 지지하는 정도의 연대로도 충분하다고 생각했던 거죠. 그런데 이 정도에서 만족하면 안 되겠다는 생각이 서서히 들었습니다. 이런 느슨함으로 우리가 당면한 실질적인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는 걸 깨닫게 된 거죠.

 

또 개인적으로 내 커리어에 대한 고민도 하게 되었습니다. 작년으로 치면 제가 일한 지 8년차가 되는 시점이었는데 지금 하는 일과 똑같은 일을 1년 더 하는 것이 내 커리어에 어떤 의미가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어요. 일하는 현장에서 보면 실무자는 대부분 여성들입니다. 그러나 중요한 일들을 결정하는 팀장 혹은 대표들은 대부분 남성들입니다. 사회 초년생 때는 내가 일하는 조직이 굉장히 평등한 조직이라고 생각하며 일했어요. 그러나 연차가 쌓이면서 ‘결국 이 사회는 남성중심적으로 돌아가는구나’를 깨닫게 되는 지점들을 여러 번 마주하게 되었습니다. 이런 현실에서 제가 1년 더 매니저로 일하는 건 어떤 의미가 있었을까요. 일 잘하는 매니저로 조금 더 큰 프로젝트를 하게 되는 것 혹은 오히려 부리기 힘든 나이가 되어 프리랜서가 되는 것 말고 다른 선택지가 없는 것처럼 느껴졌습니다. 그래서 더 나이가 들기 전에 해보지 않은 경험을 하며 나의 역량을 키워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이런 생각을 한창 할 즈음, 주변에 일 잘하는 또래들을 무대로 세워보고 싶었습니다. 여성들의 판을 아무도 만들어주지 않는다면 그 판을 제가 만들면 되는 거니까요. 그래서 능력 있는 실무자 친구들을 모아 각자가 실무자로 쌓은 전문성을 사회 초년생 여성들에게 알려주는 ‘외롭지 않은 기획자 학교’를 열었습니다. ‘외롭지 않은 기획자 학교’를 진행하면서 여기서 만난 사람들이 친구가 되어 일터 밖 동료가 되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는데 실제로 그 안에서 ‘획기적인 여자들’이라는 커뮤니티가 생겼습니다. 일터 안의 동료에게 물어보지 못하는 것들을 일터 밖 동료들에게 물으며 서로에게 긍정적인 영향을 주고 임파워링하는 모습을 보면서 커뮤니티가 필요하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이런 일련의 경험들이 모여 지금의 빌라선샤인이 되었습니다. 2019년 5월 시즌 1을 시작으로 현재 시즌 3이 시작을 앞두고 있어요. 시즌1에 80명, 시즌2에 150명의 멤버들이 함께 했습니다. 다양한 직종에서 다양한 형태로 일하는 밀레니얼 여성들이 모여 자신의 일과 삶에 대해 고민하고, 함께 해결책을 찾아나갑니다. 지금은 시즌3 멤버십을 모집하고 있어요. 아마도 지금보다 더 많은 여성들이 빌라선샤인에서 만나 일터 밖 동료가 되지 않을까, 예상하고 있어요.

 

 

누군가 그러더라고요. 빌라선샤인은 홍대 사람들의 모임 같다고요. 첫 사무실이 성산동에 있긴 했지만, 본격적인 서비스는 홍대에서 하지 않았는데 왜 홍대를 떠올릴까, 궁금했어요. 전해들은 이야기라 직접 이유를 물어 볼 수 없어, 추측을 해봤어요. 아마도 문화적인 트렌드에 민감하고, 새로운 문화를 빠르게 흡수하는 사람들이라고 느껴지나보다, 생각했죠. 나다움에 대해 고민하고, 사회적 감수성이 예민한 사람들도 떠올랐던 것 같고요.

 

빌라선샤인의 사무실은 소공동에 있습니다. 강남, 성수, 대학로 등 다양한 지역에서 모임을 하지만 주로 소공동을 중심으로 여러 프로그램이 진행되었습니다. 처음에는 강남, 분당, 일산 등 다양한 지역에서 오기 편한 곳을 찾았던 것이었는데, 지금 생각해보니 잘 한 선택인 것 같습니다. 홍대 사람들이 할 것 같다고 생각하는, 트렌디하면서도 사회적 감수성이 높은 생각과 모임들을 홍대가 아니라 서울의 중심으로 가져온 거니까요. 어딘가에 치우치거나 접근이 불편한 곳이 아니라, 어디서나 접근하기 편한 곳에서 밀레니얼 여성들의 네트워킹이 이루어질 수 있도록 한 것이 뿌듯하기도 해요.

 

저는 빌라선샤인을 통해 ‘일에 대해 이야기하고 정보를 공유할 수 있는 투명하고 공식적인 네트워크가 우리에게 참 필요했구나’를 깨닫습니다. 그 망이 좀 더 촘촘해지고, 더 넓어져서 더 많은 여성들과 연결되어야 한다는 생각이 듭니다. 촘촘한 망을 만들기 위해서 더 좋은 서비스를 만들어 보려고요. 그 끝은 알 수 없지만 더 많은 여성들과 만나고 싶습니다. 그래서 우리가 더 우리답게 세상에 영향을 끼칠 수 있길 바라요.

 

 

<나에게 영감이 되는 무엇>

 

국립현대미술관 서울관

6070년대 예술가들이 어떤 생각을 하며 작품 활동을 했는지, 요즘 사람들은 어떤 생각을 하는지 확인할 수 있는 곳. 전시를 보기 위해 자주 찾는 곳이기도 하지만 아무것도 하지 않기 위해 이곳에 즐겨 간다. 1층 로비에 앉아 혼자만의 시간을 보내는 것이다. 작품을 보관하는 곳이니 적절한 온도와 습도가 늘 유지되어 굉장히 쾌적한데 특히 채광이 좋다. 전시를 보며 서로 이야기 나누는 소리, 도슨트의 안내, 설치 작품이 움직이는 소리 등 다양한 소리들이 넓은 공간 안에서 어우러져 듣기 좋은 백색소음을 만들어 낸다. 복잡한 생각이 꺼지지 않을 때 이곳에 가, 백색소음을 들으며 홀로 고요하게 앉아있다 돌아온다.

 

책 《우리가 빛의 속도로 갈 수 없다면》

한국 여성 소설가를 좋아하는데 올해 한국 여성 소설가들의 좋은 소설이 많이 나와 즐거운 한해였다. 그 중 김초엽 작가님의 소설 《우리가 빛의 속도로 갈 수 없다면》을 올해의 소설로 뽑고 싶다. 훌륭한 소설들이 많았지만, 정서적인 측면에서 내게 가장 많은 영향을 미쳤다. 소설집의 시작인 ‘순례자들은 왜 돌아오지 않는가’를 특히 좋아하는데 ‘사랑은 상대방과 함께 세계에 맞서는 일’이라는 주제가 아름답게 그려져 있다. 침대 옆 책꽂이에 꽂아두고, 딱딱한 서류와 회의록 속의 글자를 많이 보고 온 날이면 이 소설집을 읽었다.

 

403 테이블

우리집 거실에 놓인 커다란 테이블이다. 작년 9월 이사를 했는데 이 테이블이 들어올 때 사진을 찍으며 이런 메모를 했다. ‘여기서 책도 쓰고 창업도 하고 지금은 상상하지 못한 것들도 해내겠지.’ 그런데 정말 많은 일들이 이 테이블에서 이뤄졌다. 요즘은 룸메이트와 이 테이블에 마주앉아 좋은 보이차를 마시며 어떻게 일을 하며 살아가야 하는지, 비겁해지지 않으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 등등 내가 나임을 사랑하면서 살아가는 법에 대해 이야기를 나눈다.

 

인스타그램

해외에 있는 여성 관련 커뮤니티나 프로젝트 그룹의 계정들을 여러 개 팔로우하는데 아침에 일어나면 어젯밤 지구 반대편에서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살펴보는 것으로 하루를 시작한다. 이들의 활동을 보면서 영감도 많이 받지만, 우리는 연결되어 있다는 생각이 들면서 든든해진다. 또 반대로 빌라선샤인이 그들에게 영감을 줄 수 있는 커뮤니티가 되고 싶다는 생각을 하며, 하루를 힘차게 시작한다.

 

 

글_임은선 스트리트H 에디터

사진_신병곤 포토그래퍼

기획_STACCATO H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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