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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을 위트 있게 비판하는 백수 아닌 예술가 – 신승은

세상을 위트 있게 비판하는 백수 아닌 예술가 – 신승은

Post Series: 스타카토 H 피플

 

 

안녕하세요. 노래를 만들고, 앨범도 내고, 공연도 하고, 시나리오도 쓰고, 영화도 찍고 하는 음악인이자 영화인 신승은입니다. 가끔 광고전화를 받거나 설문조사를 할 때 직업을 말해야 하잖아요. 그냥 프리랜서라고 말하거든요. 근데 다들 백수라고 생각하는 것 같아요. 제가 사는 이 동네에는 저처럼 음악 하는 사람도 많고, 그림 그리거나 글을 쓰거나 자기 작업을 하는 사람이 많은데, 우리는 서로를 백수라고 생각하진 않잖아요. 그런데 여기서 조금만 벗어나면 대부분의 사람들은 저희를 백수라고 생각하는 게 웃기기도 하고 재미있기도 하고 그래요.

 

 

남들 눈엔 백수처럼 보였을지라도, 올해 저는 좀 바빴던 것 같습니다. 지난 5월에 2집 <사랑의 경로>를 발표했어요. 첫 앨범을 활동을 시작한 지 5년 만에 낸 것에 비해서는 2집은 좀 빨리 나온 편이죠.(웃음) 앨범도 냈고, 공연도 많이 했고, 레슨도 하고, 워크숍도 여러 번 했어요. 또 2018년에 찍었던 <마더 인 로>가 올해 여러 영화제에 출품이 되어서 여기저기 다녀왔고, 서울국제프라이드영화제에서 한국단편부문 작품상도 받았어요. 뭐 내용은 딸의 자취집에 방문한 중년 여성이 딸의 친구를 만나게 되고, 그 둘이 어색하게 함께 하는 이야기? 정도 될까요. 그 과정에서 가부장적이고 이성애적인 가족 호칭에 대해 꼬집어보는 영화였어요.

 

또 최근에는 제가 만든 단편영화 <프론트맨>의 제작발표회도 했습니다. 한국양성평등교육진흥원과 서울국제여성영화제에서 진행한 단편영화 제작지원 공모에 당선되어 제작을 지원받았거든요. 국악전문고등학교가 배경인데 정기연주회를 앞두고 아쟁을 전공하는 두 여학생이 자리를 선정하는 과정에서 생긴 일, 그래서 그게 나중에 어떻게 영향을 줬는지에 대해 이야기하는 영화인데요. 제작발표회 전 기술 시사를 위해 미리 영화관에서 제가 만든 영화를 보는데, 화면이 잘린 부분도 있고 음향이 이상한 부분도 있고 해서 짜증은 났는데, 불 꺼진 극장에서 제가 앉고 싶은 자리에 앉아 제 영화를 보는데 너무 행복하더라고요. 이런 경험을 하고 있다는 자체가요.

 

제게 저의 영화는 바람에 나부끼는 실오라기 같아요. 바람에 날아가지 않게 잘 잡아서 이걸로 천도 만들고 옷도 만들어야 하죠. 반면 음악은 늘 함께하는 친구라고 해야 할까요. 저희 집이 언덕 위에 있는데요. 언덕길을 그냥 올라갈 때보다 노래를 들으며 올라가면 힘든 그 길이 조금 짧게 느껴질 때가 있어요. 음악은 제게 그런 존재인 것 같아요. 힘들 때 함께하면 조금 덜 힘들고, 그게 제가 만든 노래니까 제 감정을 잘 담고 있으니 어떤 노래보다 저를 더 잘 위로해주는 거죠. 제가 경험했던 것, 느꼈던 것, 생각했던 것들이 음악이 되니까요.

 

 

제 노래 중에 ‘당신은 성차별주의자’라는 후렴구가 있는 노래가 있어요. 한번은 술자리에 갔는데 어떤 남자애가 성차별적인 얘기를 하면서 자기 정도면 성차별주의자는 아니지 않느냐고 하더라고요. 아니긴요. 너무 성차별주의자잖아요. 그 노래에 이런 가사도 있어요. ‘여자인 내가 여자의 삶에 대해 이야기하는데 당신은 김어준 이야기를 듣고 와서 입을 열라네.’ 술자리에서 여자인 친구가 여자로 사는 고충에 대해서 이야기를 하는데 그 자리에 있던 나이 많은 한 남자분이 “너는 세상을 좀 알아야 한다”고 “김어준 팟캐스트도 좀 듣고 그래”라고 말하는 거예요. 그분도 자기 정도면 괜찮다고 생각하겠죠? 전 이런 상황을 마주할 때 마냥 절망하기보다는 그 사람을 놀려주고 싶어요. “네가 제일 성차별주의자”라고요.

 

이 노래 덕분인지 페미니즘 관련한 행사에서 공연도 많이 했어요. 다 같이 ‘당신은 성차별주의자’라며 떼창하는 거죠. 얼마나 신나는데요. 하도 많이 가서 페미니즘 행사는 ‘그 밥에 그 나물’이라고 ‘만날 이랑, 오지은, 슬릭 아니면 신승은이냐’ 한다더라고요. 더 분발해야죠.(웃음) 근데 전 아직 많이 부족한 것 같아요. 제가 무지했을 때 했던 행동들도 생각나서 반성할 때도 많고, 행여 실수라도 할까봐 걱정도 되고요. 아직은 더 많이 배워야 하는 것 같아요.

 

아직 부족할지라도 소수자, 약자에 대해 말하는 예술가가 되고 싶어요. 저도 여자이고, 사회적 안전망에서는 조금 벗어나 있는 프리랜서이자 백수니까, 이 사회에서 말하는 약자이고 소수자인 부분이 있으니까요. 그렇다고 현실 그대로 보여주는 건 의미 없는 일 같고, ‘모두 행복해졌습니다’ 같은 판타지를 보여주고 싶지도 않아요. 그 사이의 적절한 무언가를 찾고 싶고, 지금은 그걸 찾아가는 중인 것 같아요. 그 적절한 지점을 찾아서 소수자와 약자에 대해, 우리 사회 다양성에 대해 위트 있게 말하는 사람, 그러나 이런 행위를 하는 나라는 사람에게 취하지 않는 사람, 그런 예술가가 되고 싶습니다. 존경할 만한 선배들이 있고, 비슷한 생각을 하는 친구들이 있고, 서로를 존중하는 이곳이라면 좀 더 가능하지 않을까 생각해보며 빻은 소리를 하는 사람을 향해 같이 외쳐요. “당신은 차별주의자”라고요.

 

 

<나에게 영감이 되는 무엇>

 

영화감독 아녜스 바르다

내가 정말 좋아하고 존경하는 분. 아녜스 바르다 감독의 영화를 보면 억지로 감정을 몰고 가지 않는다. 다큐와 픽션의 중간에서 영화를 만드는데 현실을 정말 가감 없이 보여준다. 그게 너무 재미있고 귀엽다. 천재들을 떠올리면 성격이 못되고 나쁠 것 같은데 아녜스 바르다 감독은 따뜻한 천재다. 그런 분들이 좋다. 이랑 님, 이자람 님 따뜻한 천재 분들. 나쁘게 되는 건 쉽다. 선하고 따뜻한 건 어렵다. 선하고, 따뜻한, 그리고 강한 사람이 되고 싶다.

 

망원동 술집, 포인트 프레드릭

홍대에는 비건 식당도 많고 비건 옵션이 있는 곳도 많지만 그래도 비건으로 살기는 쉬운 일은 아니다. 가끔 너무 힘들고 지칠 때조차도 직접 요리를 해먹어야 할 때는 정말 힘들다. 배달을 해서 먹을 수도, 나가서 먹기도 쉽지 않으니까. 이곳은 비건 요리만 판매하는 곳은 아니지만 비건 옵션이 많은 술집이다. 그리고 무엇보다 안전한 공간이다. 퀴어 프렌들리한 공간이고, 동물 프렌들리한 공간이기 때문이다. 좋은 분위기와 맛있는 음식들, 그리고 안전감. 요즘 홍대에서 가장 좋아하는 공간이다.

 

래퍼 최삼

나는 위트 있는 사람이고 싶다. 그런 의미에서 최삼의 음악을 너무 좋아한다. 강자를 향한 노래이긴 한데, 그걸 앞에서 대놓고 치는 게 아니라 차로 치면 그냥 지나치는 듯 싶다가 갑자기 후진으로 달려와서 한 방 치고 가는 것 같은 그런 음악이다. 최삼 님, 당신은 정말 후진의 천재다.

 

<프론트맨>을 같이 촬영한 스태프

이번에 새 영화를 찍으면서 정말 멋진 스태프들을 만났다. 촬영부 1명을 제하고 전부 여성으로 팀을 꾸렸다. 이렇게 착착 잘 진행될 수 있구나. 스태프 한 명, 한 명에게 모두 감동이었다. 함께한 손수현, 정수지 배우님과도 정말 즐거웠다. 손수현, 정수지, 이유리, 노다해, 백미리, 이재경, 한보람, 박미선, 김슬기, 서유라, 류현아, 권민령, 윤비원, 정은채 님. 계속 영화를 함께하고 싶은 이분들이 나에게 영감이 되어준다.

 

 

글_임은선 스트리트H 에디터

사진_신병곤 포토그래퍼

기획_STACCATO 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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