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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술가를 이해하는 변호사 – 변호사 신아람

예술가를 이해하는 변호사 – 변호사 신아람

Post Series: 스타카토 H 피플

 

 

안녕하세요. 저는 변호사이자 직장인인 신아람입니다. 현재는 SBS 콘텐츠허브라는 SBS 자회사의 사내 변호사로 근무하고 있는데, 주로 방송 콘텐츠 유통과 관련된 법적인 이슈들을 다루는 일을 하고 있습니다.

 

지금은 변호사 신아람이라고 저를 소개하지만, 저에게도 예술가를 꿈꾸던 시절이 있었습니다. 이론이든, 실기든 분야와는 상관없이 예술과 관련된 일을 하고 싶다고 생각했던 시절이지요. 홍익대 예술학과를 다녔고 1학년 때만 해도 뭐든 다 할 수 있을 것 같았습니다. ‘예술계에 내 이름을 한 번 떨쳐보겠다’는 생각을 하며 자신감으로 가득 찼던 풍선 같던 시절입니다. 비록 그때로 다시 돌아갈 수 없을지라도 그 시절의 경험이 자양분이 되어 지금의 저를 만들었고, 앞으로 제가 하고 싶은 일들에 긍정적인 영향을 줄 거라고 생각합니다.

 

대학교 1학년 때, 학교에서 레몬살롱이라는 곳에서 전시를 한다는 홍보 엽서를 우연히 보았습니다. 학교 근처이기도 하고 궁금하기도 해서 친구 2명과 레몬살롱을 찾아갔습니다. 첫인상이 좋지만은 않았습니다. 어둡고 지저분해 보였거든요. 사람들이 모여서 차도 마시고 술도 마시면서 이야기를 나누고 있더라고요. 저희도 한 자리씩 차지하고 그들과 이야기를 나눴습니다. 그 사람들이 지금은 제비다방을 운영하는 CTR 멤버들입니다. 매년 1~2차례 전시회를 한다고, 함께 해볼 생각이 없느냐고 하더라고요. 꼬임에 넘어가 매일 레몬살롱을 우리 집처럼 다녔습니다. 회화, 조각, 건축, 연극 등 다방면의 문화예술업계에 종사하는 사람들과 학생들이 모여서 하나의 주제로 끊임없이 대화를 나누고 그걸 작업으로 연결해서 작품을 만들었습니다. 그걸 모아 전시를 열었죠. 저도 단편 애니메이션을 제작해 두 번이나 전시에 참여했습니다. 그렇게 재미있게 1년을 보냈습니다.

 

그런데 그 시간이 내가 계속 예술가로 살 수 있는 것인가에 대한 의문에 답을 주지는 못했습니다. 잠깐이었지만 치열하게 작업도 하고 전시도 하고 선배들도 만나면서 예술을 생업으로 삼아 살 수 있는 길을 탐색해보았는데, 그건 불가능한 일처럼 느껴졌습니다. 집안이 어려워지기도 했고, 저 스스로도 용기를 잃었습니다. 먹고 살 길을 찾아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법, 마케팅, 광고, 경제, 경영 등 예술이 아닌 다른 분야를 탐색해보았습니다. 그 중에 법학이 제일 잘 맞더군요. 당시만 해도 도피적인 선택이었을지 모르겠지만 지금으로써는 잘 한 선택이었던 것 같습니다. 적성에도 잘 맞고 재미있어서 법학을 평생의 업으로 삼은 것에 후회는 없습니다.

 

 

어떤 분야든지 경쟁이 치열합니다만 법조 분야도 경쟁이 치열해져서 자신만의 전문 분야를 추구하는 것이 중요해졌습니다. 변호사라는 라이선스를 따는 건 기본이고 거기에 자기 전문 분야가 필요해진 거죠. 저 역시도 전문분야를 고민하였는데, 너무나 쉽게 제가 가진 비교우위 분야를 찾았습니다. 바로 문화예술이지요. 홍대에서의 경험과 시간 덕분에 자연스럽게 지적재산권을 비롯한 문화예술 콘텐츠를 전문 분야로 삼게 된 것 같습니다.

 

종종 예술가 친구들에게서 전화가 옵니다. ‘지금 시간 있어?’로 시작된다면, 저도 모르게 긴장이 됩니다. ‘아, 사고가 터졌구나. 친구에게 문제가 생겼구나’ 싶은 거죠. 한번은 이런 일이 있었습니다. 친구가 기업의 의뢰로 1억 5000만 원짜리 전시 기획을 맡았는데, 이 친구가 계약서를 안 썼더라고요. 아무 문제없이 전시가 진행되었다면 큰일이 아니었겠지만 문제가 생긴 게 문제인 거죠. 전시 기획을 의뢰한 쪽에서 전시를 진행하지 않기로 한 겁니다. 전시를 개최하지 않았으니 석 달간 일한 것을 시간당 최소 인건비만 지불하겠다고 통보했습니다. 전시 프로세스를 아는 분이라면 알 겁니다. 초기 단계에 얼마나 많은 일들이 진행되는지 말입니다. 수많은 레퍼런스를 검토하고 콘셉트를 결정하고 그 콘셉트에 어울리는 작가들을 섭외했을 겁니다. 또 이 전시를 진행할 갤러리 대관과 공간 기획도 벌써 끝났을지 모릅니다. 이런 일들은 모두 무시당한 채 단순한 인건비 정도만 지불하겠다니요. 일반적인 변호사라면 인건비면 충분하다고 생각했을지 모르겠습니다만, 저는 전시 기획 과정에 대한 이해가 있기 때문에 부족한 금액이란 생각을 했고 화가 났습니다. 화가 났다는 건 그만큼 치열하게 싸울 각오가 되어 있다는 겁니다. 치열하게 싸운 덕에 그 친구는 좀 더 많은 돈을 받을 수 있었습니다. 물론 전 많이 받았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일한 만큼 정당한 대가를 받았다고 생각합니다.

 

대부분의 변호사들은 예술가를 이해하지 못할 겁니다. 예술가 역시 그렇습니다. 너무 다른 분야라 서로를 이해하지 못합니다. 서로를 이해시켜주는 고리가 되어주는 사람, 그런 사람이 필요하다면 제가 해야 하는 게 아닌가 생각합니다. 딱히 이유는 없습니다. 자꾸 눈길이 가고 자꾸 생각이 나기 때문인 것 같습니다. 아마도 제 친구들이 그곳에 있기 때문이지 않을까요. 그 친구들은 돈을 잘 벌 수 없다는 걸 알면서도, 예술의 길을 선택한 사람들입니다. 그런 이들을 전 존경하고, 지지하고 싶습니다. 비록 저는 다른 길로 갔지만 이제는 법조인으로서 이 상황을 조금이라도 이겨내려는 노력에 함께 하고 싶습니다. 그래서 예술가가 정당한 대가를 받을 수 있는 사회를 만드는 데 도움이 되길 바랍니다.

 

 

 

<나에게 영감이 되는 무엇>

 

제비다방

홍대 하면 역시 내게는 제비다방이다. 레몬살롱 시절에 만났던 이들이 이제는 상수동에 번듯하게 공간을 운영하고 있는 모습을 보면, 뿌듯하고 감동스럽다. 아는 사람들만 찾던 작은 작업실 레몬살롱에서 이제는 여러 사람들이 찾는, 홍대를 대표하는 공간이 된 이 변화를 보면서 나도 더 발전하고 성장하고 싶다는 자극을 받는다. 그리고 무엇보다 여기에 오면 나의 과거를 마주할 수 있어서 좋다. 비록 돌아갈 수 없지만 홍대에서 예술활동을 하던 과거가 있기에 지금의 내가 있다. 그 과거를 잊지 않게 해주는 공간이다.

 

《린인(LEAN IN)》

직장인으로서 가정과 일의 균형에 대해 관심이 많다. 내가 여자라는 걸 잊을 정도로 일에 있어서 나름의 위치를 찾고 싶지만, 그렇다고 가정을 포기하고 싶지도 않다. 가정 안에서도 행복을 누리고 싶은 것이다. 이 책을 쓴 셰릴 샌드버그 역시 페이스북 최고 운영책임자이면서 가정이 있는 여성으로 일과 가정, 가정과 일 둘 사이에서 균형 있는 삶을 산다. 내가 그 균형을 잃고 놓칠 때 나를 다잡아주는 책이다. 여자들은 경쟁이 세질수록 스스로 포기하고 주저앉는 경향이 있다고 한다. 공감하는 바다. 나 스스로도 포기하고 싶을 때 이 책을 떠올리며 힘을 낸다.

 

쇼미더머니

서로 디스 배틀을 하면서 ‘내가 최고다’, ‘내가 짱이다’ 말하는데 난 그런 자신만만함이 너무 부럽다. 인생을 살고자 한다면 저 정도의 배짱은 있어야 하는 게 아닐까. 어차피 모두가 다 날 좋아할 순 없다. 나를 미워하는 사람도, 내 뒤에서 나를 욕하는 사람도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가 짱이다’라는 마음으로 산다면, 정말 그렇게 될 것만 같다.

 

SBS 스페셜 <왜 반말하세요>편

사람들은 나이를 먹을수록, 경험이 많아질수록 자신이 아는 게 다라고 생각한다. 포용하는 수용성이 많이 사라지는 거다. 나는 내가 나이를 먹어도 내가 알고 있는 게 미천하고 아주 작은 것이라는 걸 잊고 싶지 않다. 또 나이를 먹으면서 경계하고 싶은 것 중의 하나가 경험을 많이 하면서 편견이 생기는 거다. 어떤 사람들이나 현상을 보면 ‘저건 저럴 거야’, ‘저 사람은 저런 사람일 거야’ 하면서 섣불리 단정하는 경우가 많이 생긴다. 또 표준에 벗어나는 걸 두려워하게 된다. 사람들이 말하는 표준과 나 스스로 만든 편견에서 벗어나 모두와 대등한 관계에서 서로 반말하면서 자유로운 관계를 맺으며 살고 싶다. 그냥 그래야지, 이 정도가 아니라 의식하고 노력하며 살고 싶다. 그런 의미에서 사람 관계에 상하를 두지 말자고 말하는 이 프로그램이 좋다.

 

문화예술기획단 래빛

홍대 미대를 졸업한 친구들의 모임. 변호사가 되면서 다른 길로 가긴 했지만 내 삶의 뿌리 중 하나는 예술이다. 예술을 놓지 않기 위해서 홍대 친구들과 만든 모임이다. 같이 좋은 전시 보고, 맛있는 음식을 먹는 활동만 하다가 2년 전에는 전시 기획을 하고 전시도 진행했다. 그림도 꽤 팔았고, 성공한 전시라고 자평한다. 언제라고 장담할 수 없지만 래빛의 이름으로 또 전시를 기획하는 날이 오기를.

 

 

글_임은선 스트리트H 에디터

사진_신병곤 포토그래퍼

기획_STACCATO 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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