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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술가들과 그들의 공간이 있는 홍대라서 – 시각예술가 안부

예술가들과 그들의 공간이 있는 홍대라서 – 시각예술가 안부

Post Series: 스타카토 H 피플

 

 

망원동에 아티스트 런 공간 ‘별관(outhouse)’을 운영하는 안부(Anbuh)입니다. 왜 굳이 활동명을 만들었느냐면, 제 본명이 마음에 썩 들지 않았어요. 모두 받침이 있어서 발음하기가 쉽지 않거든요. 이왕 이름을 새로이 짓는다면, 특정 성(性)이나 직업이 연상되지 않는 그런 이름이면 좋겠다고 생각했어요. 그리고 누군가의 안부를 묻는다는 건, 내 상황이 힘들 땐 좋게만 다가오지 않기도 하지만, 그래도 따뜻하잖아요. 제 작업이 누군가에게 그렇게 다가갈 수 있다면 하는 바람도 있었던 것 같습니다. 영어 표기를 고민하며 사전을 찾아봤는데 페르시아어로 ‘anbuh’가 ‘짙은, 풍부한’이란 뜻이래요. 그 느낌도 참 좋아서 이름으로 정하게 됐습니다.

 

 

망원동에 ‘별관’을 오픈한 것이 2018년 8월 무렵이니까, 벌써 공간을 운영한 지 1년 반이 흘렀네요. 그동안 다양한 작가들의 전시를 통해 사람들과 만나왔는데요. ‘전시’가 별관의 가장 주된 활동이기 때문에 ‘전시’로 저희 공간의 설명을 대신할까 합니다. 가장 먼저 소개하고 싶은 건, 가장 최근의 전시이기도 하고 가장 많은 사람들이 찾아오기도 했던, 지난 가을의 <레즈비언!> 전시입니다. 사실, 대부분의 전시 기획자나 공간 운영자라면, 퀴어 전시를 진행하는 것에 대해 알게 모르게 어떤 두려움 같은 게 있다고들 하더라고요. 별관에서는 단지 퀴어라서 거부하지 않는다는 것, 좋은 전시, 좋은 작업이라면 어떤 제안에도 열려 있다는 걸 보여주고 싶었습니다. 그랬던 덕분일까요. 전시기간 내내 꾸준히 많은 사람들이 찾아와주었습니다. 처음으로 전시를 연장해달라는 요청도 받았습니다. 저희 전시 이후 합정지구에서 퀴어락 전시가 있었거든요. 뭔가 이렇게 하나의 맥락으로 이어지는 느낌도 나쁘지 않더군요. 그 외에도 유튜버 단앤조엘의 단(다니엘 브라이트)의 포토저널리즘 전시, 그리고 처음으로 가벽을 세워서 전시했던 한성우 작가의 개인전 등도 올해 기억에 남는 전시들입니다.

 

제가 다양한 (신진)작가들의 작업을 보여줄 수 있는 이런 전시공간을 운영하게 된 데는 홍대라는 지역이 준 경험이 컸습니다. 2000년대 초반부터 홍대를 들락거렸는데, 전시, 책방, 공연장 같은, 홍대가 품고 있는 예술적 기운이 너무 좋았거든요. 그러다가 대학원 석사과정을 하게 되어 홍대에 거의 못 오다가 다시 오게 된 홍대는 많이 달라져 있었어요. 자기 정체성을 가진 흥미로운 공간, 특히 전시공간이 거의 없어졌더라고요. 저는 홍대의 가장 큰 저력은 예술가들이 많이 있고, 그들이 관여하는 공간이 있다는 거라고 생각하거든요. 맛집, 클럽, 호텔과 같은 유흥거리들이 사람들을 불러들인다고 생각할 수도 있지만, 글쎄요, 적어도 저처럼 어떤 책방, 어떤 뮤지션의 음악 같은 걸 누리러 홍대에 왔던 사람들도 꽤 있을 거라고 생각해요. 어쩌면 그런 아쉬움이 별관이라는 공간을 열도록 절 추동했던 것인지도 모릅니다.

 

 

또 별관 전에 저는 서교예술실험센터에서 공동운영단으로 2년여 활동을 했습니다. 처음엔 서교예술실험센터라니, 이름도 너무 딱딱하고 공공스럽다고 비판했어요. 그런데 활동하면서 생각이 바뀌었습니다. 민관 거버넌스가 어떻게 움직이는지도 보았고, 무엇보다 많은 부분 공동운영단인 우리가 자율적으로 기획하고 움직여 가면서 정말 작가, 예술가들을 위한 활동을 할 수 있었거든요. 전시기획은 물론 팟캐스트(‘서교뒷방’) 등도 해보면서, 그런 다양한 활동을 제안하고 기획하고 실행해보는 과정 속에서 지속적으로 예술가 동료를 만날 수 있었던 것이 가장 큰 수확이었고요. 또 서교예술실험센터라는 공간을 통해 공유의 재산으로써 공간이 갖는 힘을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그런 경험이 있었기 때문에, 별관을 만드는 일을 너무 겁내거나 주저하지 않고 할 수 있었던 것 같아요.

 

이처럼 저에게 홍대는 늘 자극을 주는 동네입니다. 특정 장소가 그렇다기보다는 홍대라는 곳에 모이는 사람들, 거기에 만들어지는 문화적인 공간들이 그렇게 다가옵니다. 요즘에는 그런 장소들이 많이 없어졌어요. 근데 이건 단순히 젠트리피케이션의 문제만은 아닌 것 같아요. 어쩌면 그런 나이, 그런 때가 되어서 그런지도 모르고요. 그렇지만 여전히 홍대는 ‘내가 갈 데가 너무 없구나’ 느껴질 때 불쑥 예전의 느낌을 환기시키는 무언가를 보여줍니다. 그럴 때면 반갑죠. 멀리 가지는 않았구나 싶어서요. 별관이 그런 공간으로 여겨진다면 좋겠습니다. 예술가 동료들과 관객들에게 어떤 소속감을 주고, 문화적인 경험을 주는 그런 공간으로 남고 싶습니다. 그렇게 오래오래 잘 버티는 게, 별관과 저의 숙제이자 목표인 셈이죠.

 

 

<나에게 영감이 되는 무엇>

 

작업실

예술작업을 하는 동료들의 공간이 나에겐 영감 1순위다. 꼭 작업실이 아니라 그들이 주로 머무는 카페나 공연장 같은 곳들도 해당된다. 최근 방문했던 작업공간 중 가장 인상적이었던 곳은 함미나 작가의 망원동 작업실이었다. 전시공간 알떼에고의 윗층이었는데 환하게 볕이 스며드는 공간이 너무나 정갈하고 단정해서 작가님의 작업(그림)과 묘한 대조를 이루었다. 역시 유화작업을 하는 한성우 작가의 서교 작업실은 또 다른 의미에서 영감을 준다. 마치 잭슨 폴록의 그림 같은 드라마틱한 느낌이 드는 작업실이다. 단적으로 한성우 작가에겐 팔레트가 없다. 테이블 위에 아예 물감을 부어 놓고 작업한다. 두꺼운 물감이 쌓인 그 질감, 그 냄새가 굉장히 촉각적이다. 또 안티카페 손과얼굴 같은 포괄적 의미의 작업실도 꼽고 싶다.

 

인디

인디 음악, 인디 영화, 독립출판, 독립서점… 인디한 것들은 여전히 흥미롭다. 그리고 인디한 것들을 체험하려면 언제나 수고로움이 필요하다. 시간을 내어 그곳에 가야만 접할 수 있으니까. 예를 들어 상상마당 아트시네마가 그렇고, 책방 유어마인드가 그렇다. 요즘은 공간을 운영하다 보니 예전만큼 아트시네마를 찾을 시간이 없어 아쉽다. 아직도 <벌새>를 못 봤다는 게, 말이 되나!

 

혼자인 듯 혼자가 아닌 곳

기본적으로 사람들이 많은 곳을 좋아하지는 않는 듯하다. 그렇다고 철저하게 혼자가 되는 것 또한 언제나 즐기는 것은 아니다. 혼자인 듯 혼자가 아닌 곳에서 느껴지는 편안함과 동시에 낯선 마주침들이 있다. 최근에는 연남동 후미진 곳에 있는 ‘오로시쌀롱’이란 캐주얼바를 종종 간다. 비싸지 않은 술 한잔에 마음 편히 머무를 수 있고, 누군가와의 대화 또한 이상하지 않다. 미술작가가 운영하는 공간이라 예술가들이 심심치 않게 들르곤 한다. 혼자 있어도 혼자가 아니어도 매력 있는 공간이다.

 

유튜브

유튜브에 빠진 건, 얼마 되지 않았다. 첫 시작은 ‘영국남자’였다. 한국문화를 좋아하는 외국인이 영국에 한국문화를 소개한다는 콘셉트를 보면서 정말 시대가 변했다는 걸 실감했다. ‘한류’는커녕 한국에 대한 이해가 정말 낮았던 시절도 있지 않았나. 재미로 보기 시작했지만 이제는 세상에 대한 이해를 유튜브를 통해 얻을 정도로 매력을 느낀다. 최근 도쿄올림픽 관련 욱일기를 사용하겠다는 일본 정부의 발표에 IOC가 승인한 걸 보며, 한 미국인 유튜버가 백악관 사이트에 올린 ‘욱일기 금지 청원’이 좋은 예가 될 것 같다. 그 내용을 보고 나서야 욱일기에 대해 무심했던 스스로가 더욱 창피해졌고, 정말 국가적 차원의 대응이 필요하다는 것을 알 수 있었으니까. 또한 영화 <기생충> 리뷰를 보다가 알게 된 미국인 영화평론가 달시 카펫이 독립 및 저예산 영화인들에게 주는 ‘들꽃영화상’을 제정했다는 것도 알게 되었다. 정말 감사하기 이를 데 없다. 그러면서 우리가 ‘우리’라고 말하는 ‘우리’에 대해 조금 더 생각해봐야 하지 않을까 싶었다. 이런 생각들을 유튜브를 보면서 하게 된다.

 

 

글_정지연 스트리트H 편집장

사진_신병곤 포토그래퍼

기획_STACCATO H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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