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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로움과 자기 확신에 주목할 때 – 하지훈 디자이너

자유로움과 자기 확신에 주목할 때 – 하지훈 디자이너

Post Series: 스타카토 H 피플

 

 

이수향 디자이너와 함께 파이카 스튜디오로 활동하고 있는 그래픽디자이너 하지훈입니다. 저는 어떤 주제를 가지고 제 나름대로 고민하고 해석한 개념을 시각 매체로 풀어내는 걸 좋아하는 사람이에요. 스스로 궁리하고 작업하는 자유분방함이 큰 그래픽디자인은 정말 재밌어요. 저에겐 궁극의 즐거움을 주는데 하면 할수록 욕심도 많아지는 것 같아요. 그래서 제 목표도 더 다양하게 작업을 하는 거예요. 세상의 모든 디자인을 다 해보고 싶어요. 뭐랄까, 디자인에 관한 한, 욕심이 많은 것 같기도 해요.

 

 

어릴 때부터 그림으로 제 생각을 표현하길 좋아했어요. 제 성향과 맞을 것 같아 산업디자이너를 목표로 대학교에 진학했어요. 그런데 뭔가 저랑 안 맞는 거예요. 군대에 입대해서 제 적성에 맞는 일을 고심하던 중 그래픽디자인을 알게 되었어요. 산업디자인보다 결과물이 훨씬 다채롭고, 이미지로 보여줄 수 있는 영역이 정말 넓었어요. 무조건 이걸 해야겠다고 확신했죠. 그후로는 혼자서 그래픽디자인 작업을 했어요. 일러스트, 포토샵 툴부터 포스터나 이미지를 만드는 건 독학으로 배웠어요. 학교나 학원에서 수업을 들어본 적은 없어요. 수업을 들으면 교수가 알려주는 방식대로 해야 돼요. 저는 그런 틀에 갇히는 것보다 자유롭게, 나만의 작업을 하고 싶었어요. 전공 수업시간에는 교수님 몰래 제 작업을 하는 일이 다반사였어요. 생각해보면 오롯이 혼자가 되는 시간도 좋았던 것 같아요. 누구에게도 방해받지 않고 내 마음껏 자유롭게 생각하고, 이미지로 뭔가를 만들며 나만의 시간에 빠지는 그래픽디자인이 가진 매력은, 정말이지 말로 다 표현할 수 없어요.

 

스스로 작업한 결과물로 포트폴리오도 만들고, 취업도 했어요. 하지만 회사는 저랑 맞지 않더라고요. 저는 분야나 종류에 얽매이지 않고 다양한 디자인을 해보고 싶었는데 회사를 다니면 그렇게 할 수 없다는 걸 깨달았어요. 그래서 회사를 그만두고 스튜디오를 차렸죠. 뭐, 프리랜서를 선언한 거나 다름없죠. 제 생각은 간단하고 명료했어요. ‘내가 하고 싶은 작업을 하겠다’ 이거였죠. 잘될 거라는 확신도 있었어요. ‘내가 이 일로 잘할 수 있을까’, ‘과연 돈은 벌 수 있을까’ 이런 걱정은 전혀 없었어요. 돈을 못 벌면, 뭐 굶는 거고, 굶으면 살은 빠지겠다, 안 되면 그냥 다이어트를 한다고 생각하자고, 그럼 된다고 생각했어요. 무대포였던 거죠. 그렇게 회사를 나와 2015년 파이카 스튜디오를 차렸죠. 이수향 디자이너와는 제가 마지막에 다니던 회사에서 만났어요. 제가 먼저 함께 스튜디오를 해보지 않겠느냐고 제안했어요. 작업 결과를 보고 문제점을 지적하고 보완해줄 수 있는 동료가 필요하다고 생각했는데 저와 스타일이 정반대인 이수향 디자이너가 딱이라고 생각했거든요.

 

 

저는 초등학교 때부터 지금까지 줄곧 홍대 앞에 살고 있어요. 파이카 스튜디오도 연남동에 있어 1년 365일 홍대 앞에서 지내고 있는 셈이에요. 제가 이곳을 좋아해서 하는 말이 아니라, 홍대 앞은 정말 재미있고 자유로운 활동이 많아요. 이곳에 모여드는 사람도 마찬가지예요. 이런 분위기와 사람들에게 영향을 받아 파이카 스튜디오도 다양한 활동을 해요. 나만의 포스터 만들기, 명함 만들기를 진행했고, 연남동에서 나온 포스터, 전단지, 쿠폰, 신문지 등 각종 종이로 만드는 포스터 워크숍도 열었어요. 포스터가 꼭 컴퓨터로만 작업해야 한다는 법은 없잖아요. 그 틀을 깨는 거죠. 예를 들어 골목에서 주워 온 깡통으로 포스터를 만들 수도 있는 거예요. 작업 스타일 측면에서 자유분방함을 수용해주는 정도가 이곳이 가장 폭넓다고 생각해요. 이런 점은 제가 디자인할 때 추구하는 방향성과 잘 맞닿아 있어요. 저는 디자인을 할 때 새로운 걸 추구하고 다양한 시도를 하고 싶거든요.

 

그렇다고 하고 싶은 것만 하고 싶지는 않아요. 하기 싫은 것도 잘하고 싶어요. 잘 알지 못하는 분야도 배워나가면서 좋은 결과를 내고 싶어요. 그런 점에서 저는 홍우주사회적협동조합과 하는 작업을 가장 좋아해요. 디자이너에게 자유를 주거든요. 전체적인 기획의도 정도만 설명해줄 뿐 홍우주는 그 이상을 설명하려 하거나 요구하지 않아요. 디자이너가 마음껏 생각하고, 해석하고 자유롭게 표현할 수 있게 디자이너가 한 작업을 존중해요. 홍대 앞이 아무리 변해도 이런 가치관, 기본 토대는 변하지 않을 것 같아요. 여기에서 저도 오랫동안 다양한 디자인을 하고 싶고요.

 

 

<나에게 영감을 주는 것>

 

걷고싶은거리

홍대 앞은 나에게 고향과 같다. 건물이 바뀌고 문화가 변했다며, 예전과 다르다고 말하는 사람이 많지만, 내가 가장 많은 시간을 보낸 이곳은 여전히 나에게 가장 익숙하고 편한 동네다. ‘내가 살던 동네’라는 정서는 변하지 않는 거다. 걷고싶은거리는 홍대 앞에서 가장 흥미로운 곳 중 하나다. 버스킹을 준비하는 뮤지션, 외국에서 온 관광객, 데이트 중인 커플, 술에 취한 직장인 등 다양한 사람들을 볼 수 있는 곳이다. 가끔씩 나는 혼자 가서 이 북적북적한 인파 속에 섞이곤 한다. 가만히 앉아서 지나가는 사람들을 보기도 하고 여기저기를 돌아다니면서 거리를 걷기도 한다. 그럴 때 내 눈에 담기는 사람들의 어떤 행동, 내 귀에 들리는 특정 말들이 있다. 그것은 아주 개인적이거나 비밀스러운 이야기일 때도 있다. 나는 이렇게 어떤 순간에 보게 되는 행동이나 들리는 말들을 토대로 나만의 생각, 나만의 그래픽으로 해석하길 좋아한다. 패션도 다양하고 하는 행동도 다르고 서로 말하는 언어도, 주제도 다른 사람들이 많은 이곳에 앞으로 더 다양한 사람들이 모여들면 좋겠다.

 

오디오북

나는 혼자 생각하는 시간이 많고, 그 시간을 좋아한다. 친구도 3개월이나 6개월에 한 번씩 만날 정도로 사람을 잘 만나지 않는 편이다. 일이 없는 날, 쉬는 날은 집에서 혼자 생각하면서 시간을 보낸다. 나에게 가장 편하고 좋은 시간이다. 이때 오디오북을 듣는다. 고전소설, 현대문학을 많이 듣고 역사 이야기도 많이 듣는다. 작업을 할 때도 듣는다. 이야기를 들으면서 내 나름대로 해석하고 생각을 하고, 가끔은 나의 생각을 적기도 한다.

 

역사

나는 한국사, 세계사 골고루 관심이 많다. 역사와 관련된 것이라면 오디오북, 다큐멘터리, 영화, TV프로그램 가라지 않고 빠짐없이 챙긴다. 최근에는 역사에 기록되지 않은 사람들의 이야기나 정보를 찾고, 기록하는 재미에 빠져 있다. 가령 어떤 사건으로 100명이 죽었다고 하면, 나는 그 100명에 대한 기록이 왜 없는지 의아하다. 기록으로 남는 인물들은 대부분 왕이나 양반 등이다. 그 시대에 중요하다고 판단되는 인물이 기록으로 남고, 역사가 된다. 그런데 그 중요도는 누구의 기준인가? 모든 사람은 저마다 각자 존중받아야 하는 존재 아닌가? 나는 이런 형평성에 맞지 않는 게 싫다. 그래서 역사에서 잊힌 개개인들의 이야기를 하나씩 찾고 일기처럼 나만의 기록을 하고 있다.

 

영화

나는 끊임없이 어떤 콘텐츠를 계속 틀어두고 듣는 편이다. 영화는 그중 하나다. 영화를 보기 위해서가 아니라 듣기 위해 틀 때가 많다. 가장 좋아하는 영화는 <반지의 제왕>이다. 대학생 때는 이 영화를 보느라고 학교에 지각한 적도 많았다. 방대한 서사와 그 안에 담긴 작가의 세계관을 볼 때마다 늘 놀랍다. 어떻게 보면 하나의 역사를 만든 거나 다름없다. 볼수록 매력적이다.

 

 

글_권민정 스트리트H 객원에디터

사진_신병곤 포토그래퍼

기획_STACCATO 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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