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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이 전해지는 취향을 만날 때 – 식물상점 대표 강은영

마음이 전해지는 취향을 만날 때 – 식물상점 대표 강은영

Post Series: 스타카토 H 피플

 

 

2017년부터 식물상점을 운영하면서 일상에서 식물을 만나는 다양한 방법을 제안하고 있는 강은영 입니다. 무대나 공간을 상황에 맞게 식물로 연출하거나 전시 맥락에 맞춰 식물이나 꽃을 설치해 전시하는 작업을 하거나 일반인을 상대로 꽃다발을 제작하고 판매도 하면서 식물을 소개하고 있습니다.

 

 

저는 어릴 때부터 그림을 그렸고 식물과 가깝게 지냈어요. 식물을 그리기 시작한 건 대학교 2학년 때부터였어요. 제가 다니던 미대 건물 뒤에는 와우산이 있었는데요. 내가 뭘 그려야 할지 모르겠고 마음이 답답할 때마다 그곳으로 찾아갔어요. 일종의 안식처였죠. 그곳에서 가만히 식물들을 들여다 보며 산에 앉아 있는데 식물을 그리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때부터 줄곧 식물을 주제로 작업을 했어요. 연희동에 첫 작업실을 구했을 때는 판화작업은 뒷전이고 식물만 키웠어요(웃음). 첫 개인전도 판화와 식물을 함께 하는 작업으로 전시를 열었습니다. 전시명은 <감광생활>. 판화 작업과 식물 키우기의 유사함을 느끼고 진행한 전시입니다. 판화 작업은 사람 손의 개입이 무척 중요해요. 작업을 진행할 때 환경에도 영향을 많이 받는데, 그때마다 다르게 반응해줘야 하는 부분들이 작업의 결과에 많은 영향을 미쳐요. 마찬가지로 실내 식물을 키울 때도 환경에 맞춰 그때그때 반응해줘야 하는 부분들이 있거든요. 전시 준비를 하면서 정말 좋았어요. 그림과 판화가 제 인생의 전부일거라고 생각했는데 식물을 만나고부터 생각이 달라지기 시작했습니다.

 

‘내가 이걸 더 재미있어 하는 거 같은데, 나 그냥 미술 안하고 식물로 작업을 해볼까’ 식물로 내가 하고 싶은 작업을 해보자고 마음먹었죠. 처음엔 작업실에서 식물상점을 시작했다가 망원동에 온 지는 1년 반이 되었네요. 식물상점이란 이름 때문에 식물만을 파는 곳처럼 느껴지지만 저는 식물상점을 통해 식물로 하고 싶은 다양한 작업과 활동을 해요. 식물로 무대를 만들거나 공간을 채우거나 전시를 열죠. 물론 꽃다발을 만들어 판매하기도 하고, 화분을 팔기도 하지만요. 도시에서 만나는 식물에 관심이 많아서 어떻게 하면 일상 속에서 식물을 자연스럽게 만날 수 있을까 고민하고, 사람들과 식물에 대해 함께 이야기하는 자리도 많이 만들고 있어요. 현재 대전에서 <파종 워크숍>을 준비 중인데요. 우리 주변에서 쉽게 구할 수 있는 포도, 체리 같은 과일 씨앗으로 파종하는 방법을 알려주는 수업이에요. 저는 식물을 키우는 게 특별한 일이 아니라 말해주고 싶어요. 그래서 식물이 일상 속에서 좀 더 자연스러워지길 바랍니다.

 

 

식물상점을 운영하다보면 다양한 분들을 만나요. 미술작가, 디자이너 등 창작가들도 많이 만나게 되지요. 우연한 만남이 협업으로 연결될 때도 종종 있습니다. 작년에는 엘리펀트스페이스 개관 1주년 기념 전시에 참여했어요. 16세기 네덜란드 화가 히에로니무스 보쉬의 ‘세속적인 쾌락의 동산’ 그림을 현대의 관점으로 재해석하여 표현한 전시로 영상, 음악 등 다양한 분야의 작가들이 그림 속 요소들을 재해석하여 표현하였어요. 저는 실제 식물과 형태적 유사점이 있는 보쉬 그림 속 식물을 비교 관찰해가며 식물을 구성했어요. 그림 속 주제와 공간에 따라 낙원의 식물, 지상 쾌락의 정원 식물, 지옥의 식물 이렇게 3가지로 나눠 구성했는데 재미있었어요.

 

창작가만이 아니라 친절한 주민도 많이 만나요. 저는 대학교 2학년 때부터 지금까지 홍대 주변에서 살고 있는데요. 제가 좋아하는 사람들이 많은 홍대가 여전히 좋아요. 친구도 많고, 저에게는 가장 익숙한 곳이죠. 그래서 홍대 앞을 떠나기가 싫어요. 또 이곳은 취향이 ‘좋은’ 사람들이 운영하는 공간이 많다는 생각이 들어요. 취향이 좋다는 건 단숨에 이뤄지는 일이 아니에요. 인생에서 많은 걸 보고, 생각하고, 시행착오를 겪은 후 만들어지거든요. 그런 개인의 취향이나 고민이 공간에 잘 묻어나는 곳들이 이곳에는 참 많죠. 그런 공간들을 만나는 건, 제게 큰 영감이 되는 일이에요. 마음이 전해지는 취향이 담긴 공간이 홍대 앞에 더 다양해지면 좋겠어요. 식물상점도 제 취향이 전해지는, 누군가에게 의미 있는 공간이 되면 좋을 것 같고요.

 

 

<나에게 영감이 되는 무엇>

 

한강에서 달리기

기분이 우울하거나 힘들 때, 대학생 때는 와우산을 찾아갔다면 지금은 한강에 간다. 식물상점에서 걸어가면 한강까지 10분 정도 걸린다. 나는 이곳에서 달리기를 한다. 달리기는 2015년부터 시작했다. 꾸준히 하진 않아도 건강을 챙기기 위해 뛰려고 노력한다. 한강에 있는 나무와 꽃, 식물들을 보면서 달리는 순간이 정말 좋다. 한강은 구간마다 종류가 다른 나무를 볼 수 있고 계절별로 식물이 바뀐다. 봄에는 아카시아 꽃 향기를 느낄 수 있고 5~6월의 한강변을 달리면 이팝나무 꽃의 향을 느끼며 달릴 수 있어 정말 좋다.

 

하늘, 하늘이 가진 색깔

어릴 때부터 하늘을 보면서 색깔 공부를 했다. 해가 뜨거나 질 때 하늘색이 변하고 하늘 색의 변화에 따라 주변을 이루는 색도 함께 물드는 걸 관찰하곤 했다. 건물, 창문, 도로, 나무 등 주변 환경을 이루는 요소들이 시간에 따라 달라지는 톤, 색깔을 보면서 혼자 감탄할 때가 많았다. 지금도 여전히 하늘을 보면서 색깔 공부를 한다.

 

그림에서 보는 다양한 요소

정물화나 풍경화 같은 옛날 그림도 좋고, 현대미술도 좋다. 종류에 제한을 두지 않고 어떤 작품이든 좋은 작업을 보는 걸 좋아한다. 박물관, 갤러리를 찾아가기도 하고 인터넷으로도 보고, 책을 찾아보기도 한다.

 

여행에서 만나는 식물

여행을 자주 다니는 편인데 낯선 곳에서 식물을 만날 때 여행의 즐거움은 배가 된다. 여행을 가는 목적이 식물을 보기 위함은 아니지만 늘 자연스럽게 식물에 눈이 가고, 걷다보면 식물이 내 앞에 있다. 뭐, 특별하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도시든 시골이든 식물은 어느 지역을 가든지 일상생활 곳곳에서 발견할 수 있기 때문이다. 가로수도 식물이지 않는가. 도로 위에서 만나는 풀도 식물이다. 애써 식물을 찾지 않으려 해도 보이는 건 당연하다. 최근 기억에 남는 식물은 라오스에서 만난 식물이다. 라오스에서 자란 식물은 박력이 넘친다. 고온다습한 환경이라 정말 잘 자라더라. 내가 모르는 새로운 식물을 더 많이 알고 싶고, 식물원, 온실, 정원처럼 식물로 만드는 공간도 더 다양하게 많이 보고 싶다.

 

 

글_권민정 스트리트H 객원에디터

사진_신병곤 포토그래퍼

기획_STACCATO H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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