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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 쓰는 것보다 다른 게 더 재미있는 시인 – 시인 권창섭

시 쓰는 것보다 다른 게 더 재미있는 시인 – 시인 권창섭

Post Series: 스타카토 H 피플

 

 

안녕하세요. 포켓몬고 트레이너로 활동중인 권창섭입니다. 시인이긴 한데 시를 열심히 쓰는 시인은 아닌 것 같아요. 시보다는 다른 글을 더 많이 쓰고, 쓰는 일보다는 다른 일을 더 많이 하고 있죠. 또 글과 관련된 여러 활동, 콘텐츠에 대한 궁리가 많은 사람이에요.

 

어릴 적, 시인이 되면 멋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막연하게 하긴 했었는데 구체적인 노력을 했던 편은 아니었습니다. 국문과 출신이긴 했지만, 학부 때 시 창작 동아리를 한 정도에 불과했고, 대학원을 진학하면서는 문학이 아닌, 오히려 언어학을 전공하였습니다. 그러다 대학 동기 중 등단한 시인이 있는데, 제게 시를 다시 써볼 생각이 없느냐고 하더라고요. 그때부터 다시 시를 써보았고 운이 좋게 등단을 했어요.

 

저는 어렸을 때부터 막연하게 이런 생각을 했던 것 같아요. 어떻게 인간은 땅을 사고 팔 수 있을까, 왜 토지가 사유화될 수 있을까 하는 생각들. 점점 건물주의 횡포로 인해 개인 영업자가 내몰리는 일들이 많아질수록 가슴이 아팠습니다. 한국에서 건물주의 힘은 왜 이렇게 센 것이며, 그 힘은 어디에서 발생하는 것인지, 그곳에서 영업을 하는 상인들은 왜 국가와 사회로부터 보호를 받지 못하는지, 재개발은 누구를 위한 개발인지, 궁금증과 불만은 커져만 갔습니다.

 

 

오래 진보 정당 당원으로 활동한 덕에 연대의 자리에 어렵지 않게 참여할 수 있었습니다. 특히 궁중족발 사건이 생겼을 때는, 제가 적극적으로 연대를 하고 싶다는 생각에 ‘낭독회’라는 형식으로 공간을 지키는 투쟁에 함께했습니다. 그 공간을 건물주에게 완전히 뺏긴 후에도 ‘낭독회’는 이어 갔는데요. 한번은 홍대의 두리반에서 “다시 두리반에서”라는 이름으로 낭독회를 열기도 했습니다. 두리반은 상가 세입자 투쟁의 상징이기도 하지만 재개업의 상징이기도 합니다. 궁중족발이 두리반처럼 다시 개업하기를 바란다는 의미에서 그곳을 찾아 낭독회를 열었죠.

 

홍대 주변은 부동산 개발업자와 건물주들로 인한 ‘젠트리피케이션’이 서울의 그 어느 지역보다 극심한 지역입니다. 단순히 공연을 보러, 술을 마시러, 맛있는 걸 먹으러 왔던 홍대였지만 점점 이런 연대의 자리에 함께하면서 홍대와 인연을 맺게 되었던 것 같아요.

 

홍우주사회적협동조합에 가입도 했고 스타카토H에서 “연시홍시”란 프로그램도 진행한 적 있습니다. “연남동에서 시 읽고 홍대에서 시 쓰기”를 줄인 이름인데요. 연남동 돌아다니면서 이런저런 흥미로운 공간 앞에서 그 공간과 관련된 시를 읽고, 홍대로 와서 시를 써보는 투어 겸 워크숍 프로그램이었습니다. 시 창작을 평소에 해 보지 않은 분들이 주로 참여하셨기에 쉽고 편한 형식으로 시 창작 워크샵을 진행하였는데요. 롤링페이퍼처럼 종이를 돌려가며 시를 완성해 보는 것이었습니다. 나 혼자 시를 쓰진 않았지만 나의 시가 완성되고, 모두의 시에 관여하지만 단 한 편의 시도 쓰지 않는 방식인 거죠. 무척 멋진 시들이 나와서 진행하는 저도 깜짝 놀라곤 했습니다.

 

 

사실 저는 문학의 아우라를 믿지 않아요. 문학의 ‘있어 보임’이라고 할까요. “문학”이라는 이름으로 허용되는 불가침의 영역을 불신하고, 오히려 문학 자체를 도구로 삼아 뭔가를 해볼 수 있지 않을까 열심히 궁리하는 중입니다. 문학 그 자체가 목적이 아닌, 문학이 퍼포먼스나 놀이의 도구나 대상이 되는 거죠. 어떤 방식이 될지 모르겠지만 열심히 고민하다 보면 재미있는 뭔가가 나오지 않을까요.

 

 

<나에게 영감이 되는 무엇>

 

김목인

시를 무어라 정의해야 할진 모르겠지만, 김목인의 가사는 시보다 더 시 같다. 김목인뿐만이 아니다. 김사월, 시와, 9와숫자들, 권나무, 단편선 등 나에게 영감을 주는, 나를 질책하게 하는 뮤지션들이 참 많다. 이들의 노래를 들으면서, 나는 이들의 언어와 표현에 늘 감탄한다. 심지어 거기에 멜로디까지 입힌다니…. 정말 부럽다. 모 뮤지션에게 이런 말을 하자 그는 역으로 ‘음악가는 언어와 멜로디, 두 개로써 겨우 표현하는 걸, 작가들은 언어라는 하나의 도구로 표현하지 않느냐’고 위안(?)의 말을 해 주기도 했지만 부러움이 희석되진 않는다.

 

잠만보 친구들

나는 나와 직접 관계를 맺고 있는 사람들로부터 많은 걸 배우는 사람인 것 같다. 그러니 내게 가장 큰 영감을 주는 사람들은 당연히 내 주변에 있는 사람들이다. 특히나 반성과 비판을 잘하는 친구들일수록 그렇다. 최근 가장 큰 영감과 영향을 준 사람들은 바로 “잠만보”란 모임의 친구들이다. 에코페미니즘 책읽기 모임으로 처음 만났는데 사실 책을 읽는 활동들을 많이 한 것은 아니다. 그보다는 문학이란 무엇인가, 작가란 무엇인가, 문학을 가지고 우린 무엇을 할 수 있을까, 판을 어떻게 바꾸고 각자 자신은 무엇을 할 수 있을까 등에 대해 함께 고민하고 이야기하곤 한다. 이 친구들 덕분에 머릿속의 고민과 상상력이 동시에 커져 간다.

 

홍익대 인문사회관

홍대에서 6학기 동안 필수 교양인 글쓰기 강의를 맡은 바 있다. 그 강의를 진행하면서 ‘홍대’라는 공간에 대해서 많이 생각해 보게 되었다. 강의의 최종 결과물로서 소논문 과제를 부여하면 고민 끝에 홍대라는 공간과 관련된 주제를 선택하는 경우가 많더라. 가령 홍대입구역에서 인문사회관까지 가장 빨리 오는 길은 과연 어떤 루트인지, 그런데 왜 사람들은 그 길을 선택하지 않는지에 대해 작성한 소논문을 예로 들 수 있겠다. ‘홍대’라는 공간과 가장 직접적인 관련을 맺는 이들의 글을 보고 발표를 듣고, 또 이들과 대화를 나누다 보면 자연히 ‘홍대’라는 공간에 대해 사유할 수밖에 없다. 덕분에 ‘홍대’라는 공간에 대한 내 생각이 확장될 수 있었다. 어쩌면 내게 ‘홍대’에서 가장 중요한 곳은 홍익대 인문사회관이 아닐까.

 

<게으름에 대한 찬양>

제목 때문에 게으름을 찬양하는 책이라고 많이 오해하는데, 열심히 사는 것만이 가치가 될 수 있는 자본주의적인 사고와 현실을 비판하는 책이다. 게으름의 시간을 통해서 파생되고 산출되는 가치가 있으며 그것이 인간을 풍요롭게 만들 수 있다고 저자는 말한다. 그것들 중에 가장 대표적인 것이 예술 아닐까. 이 책을 읽고 나의 가치관이 많이 바뀌었다. 그전의 나는 5년 뒤에는 뭘 해야지, 10년 뒤에는 뭐가 되어야지 하는 “노력”과 “열심”에 대한 계획이 있었다. 그런데 이 책을 읽고 그런 계획들이 없어졌다. 무의미해졌달까. 오래 해 오던 전공 공부도 사실상 그만뒀다. 현재를 살다 보면 무언가의 내가 되어 있지 않을까 생각해본다. 계획 없이 살아도 잘 살 수 있다는 걸 보여주고 싶다. 시간의 소요 속에서 나의 가치를 발생할 수 있는 그런 삶을 살고 싶다.

 

 

글_임은선 스트리트H 에디터

사진_신병곤 포토그래퍼

기획_STACCATO 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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