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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르게 사는 삶을 실험하다 – 릴리쿰 선윤아(호랑)

다르게 사는 삶을 실험하다 – 릴리쿰 선윤아(호랑)

Post Series: 스타카토 H 피플

 

 

실험하는 사람, 선윤아입니다. 올해 초에 하나의 질문이 담긴 블라인드 북 형태로 책을 소개하는 질문서점 인공위성과 인터뷰를 한 적이 있었는데요. 나이나 성별 빼고 저를 한 줄로 소개해달라고 하더라고요. 뭐가 좋을까 고민했는데, ‘실험하는 사람’이란 말보다 더 좋은 설명이 없더라고요.

 

 

‘릴리쿰’이라는 단체에서 활동하고 있는데요. 릴리쿰을 통해 여러가지 기술과 놀이에 관한 실험을 하고 있고, 무엇보다 릴리쿰이라는 활동을 계속 이어가는 것 자체가 실험이거든요. 정확히는 우리의 활동을 지속할 수 있는 방법을 고민하고 실험해보는 중이라고 할까요. 초기에 릴리쿰 멤버들은 거의 직장을 다니면서 활동을 병행했었는데, 좋아하는 일을 더 하고 싶었기 때문에 모두가 프리랜서가 되는 모험을 감행했죠. 하지만 또 ‘언제까지 프리랜서로 살 것인가’란 질문이 시작되었고, 지금은 법인의 형태를 갖춘 회사가 되었는데요. 회사니까 그 안에서 일하는 사람들은 월급을 받아가는 구조를 만들어야 하잖아요. 충분한 수익을 내야 하기 때문에 프로젝트를 굉장히 많이 진행했어요. 실제로 “우리 이러다가 과로사하는 거 아닐까”라고 말할 정도로 정말 쉴 새 없이 일을 한 적도 있었죠. 근데 그렇게 해서 만든 월급이 우리를 행복하게 만들었느냐 하면, 그건 아니었어요. 애초에 저희가 시작한 이유나 목표와도 맞지 않았고요. 그래서 지금의 결론은 ‘스스로 최소, 최대 지점을 잘 설정하고 그에 맞게 원하는 만큼 일하자’예요. 각자가 잘하는 일로 돈은 더 벌 수 있게 하고, 릴리쿰에서는 하고자 하는 작업에 집중하는 환경을 만들고 싶어요. 그게 맞는 방법일지, 또 나중에 이건 아닌 것 같다며 다른 방법을 찾을지도 모르겠지만, 이 활동들을 지속하면서 잘 먹고 잘 사는 삶을 살기 위해 방법을 모색 중이에요.

 

릴리쿰의 첫 시작에는 ‘땡땡이공작’이란 활동이 있었어요. 2011년 즈음에 사회를 위한 디자인을 하겠다고 지원사업을 신청해서 지원금을 받았는데, 구체적으로 누구와 무엇부터 하면 좋을까 고민하면서 이런 활동에 관심 있을 법한 사람들에게 메일을 보냈어요. 12명 정도가 모였고, 공동의 목표에 대한 논의를 시작했죠. 근데 그 과정이 좀 길었나 봐요. 마지막에는 4명만 남더라고요.(웃음) 뭐라도 해보자는 심정으로 얘기를 나누면서 내렸던 결론은 ‘놀자’는 거였어요. 어른이 되면서는 어릴 때처럼 ‘놀이’ 자체에 집중해서 잘 안 놀잖아요. 놀면 안 될 것 같고, 놀이 자체가 의미 없는 활동처럼 보이고요. 근데 우리는 그냥 놀고 싶었어요. 대신 조금 다른 놀이를 원했죠. ‘땡땡이공작’이라는 이름처럼 만들면서 놀고, 놀면서 만드는 활동이 그때부터 시작되었어요. 레고에 LED를 넣어서 장난감 조명을 만들기도 하고, 연날리기와 무선통신을 결합해보자 덤벼보기도 하고, 아이폰을 자가 수리해보는 워크숍도 해봤어요. 없어도 되는 것들을 만들어보고, 안 해도 되는 행위들을 해보면서 재미있게 놀았어요.

 

열심히 놀이를 하다 보니까 ‘우리끼리 노는 거에만 집중하지 말고 이런 활동을 함께 하고 싶은 사람들이 모일 수 있는 공간을 마련해보자’는 데까지 생각이 발전했어요. 2013년, 작업실을 이태원에 열었습니다. 2년 정도 이태원에 있다가 연남동으로 이사를 왔어요. 연남동으로 온 건, 멤버들이 대부분 홍대 인근에 살아서 가까운 동네로 오고 싶었던 이유도 있고, 이태원이 생각했던 것 이상으로 상업적인 동네라 우리와 맞지 않았던 것도 있어요. 차고를 개조한 공간이었던 연남동 작업실에서 3년 정도 있다가 작년에 경의선 숲길 근처에 릴리쿰 스테이지를 열었어요. 정부의 지원을 받아서 만든 메이커 스페이스인데, 쉽게 말하면 창작자들이 모여서 다양한 만들기를 실험하는 공간이에요. 소재와 주제가 무엇이든 각자가 원하는 방식으로 제작하고 연구하고 때로는 다른 분야의 것을 접목해가면서 창작활동을 이어갈 수 있는 그런 공간이죠. 저희는 여기서 다양한 워크숍이나 강연을 열고, 여러 가지 장비(리소 프린터, 컴퓨터 자수기, 레이저 커터 등)를 직접 사용할 수 있게 돕는 서비스를 하고 있어요. 또 각자가 관심 분야를 연구하고 있기도 하고요.

 

 

저는 ‘암호뜨개단’이란 연구모임을 하고 있어요. 암호뜨개단은 1700년대의 혁명과 여성의 이야기로부터 영감을 받은 프로젝트예요. ‘암호’와 ‘뜨개’라는 두 가지 주제를 연결하여 연구하고 제작하는 모임입니다. 우리나라에서는 7~80년대 즈음 가정에서도 사용했다고 하는 니팅머신(Knitting Machine, 횡편직기)을 이용해서 암호가 숨겨진 편물을 만들려고 하는데요. 이 낡은 기계의 메커니즘이 굉장히 매력적이에요. 특히 천공카드를 사용해서 패턴을 입력할 수 있는 종류의 니팅머신은 천공카드 – 알고리즘 – 컴퓨팅으로 이어지는 기술적 맥락을 담고 있어서 더 흥미로워요.

 

생각해보면 전 올드 미디어와 뉴 테크놀로지를 조금 다르게 엮어보는 것에 관심이 많은 것 같아요. 그래픽 디자인을 전공했지만 화면 바깥에 있는, 좀 더 손에 잡히는 원본을 만들어내는 작업에 대한 동경도 있었고요. 반면에 시각적 언어를 코드로 웹에 구현하는 디지털 테크놀로지를 다루고, 그 기술을 하드웨어에 접목하는 것에도 관심을 가졌어요. 어떻게 보면 양극단에 있는 것처럼 보이는, 손으로 뭔가를 만들어내는 것과 하이테크라는 두 가지 기술의 층위를 뒤섞는 작업들을 지금은 릴리쿰을 통해 하고 있는 거죠. 이 작업을 하면서 알 필요가 없는 것들을 알게 되고, 몰라도 큰 불편은 없지만 알면 즐거운 것들이 늘어나는데 그게 제 삶을 좀 더 풍요롭게 만드는 것 같아요. 무엇보다 제가 하는 활동이 저라는 사람이 살아가는 방식을 설명할 수 있다는 게 의미 있는 것 같아요. 릴리쿰 활동을 통해 계속 이야기해 온 ‘삶의 태도로서의 만들기’는 거대한 시스템의 부속처럼 수동적인 소비자로만 살아가는 삶이 아닌, 조금 더 인간답고 자기다운 삶을 꿈꾸는 것이거든요.

 

작년에 ‘릴리쿰 스테이지’를 새롭게 열면서 정부 지원금을 받았어요. 지원심사에서 왜 이 공간이 이 지역에 필요한지 설득해야 하는 과정이 있었는데, 그때 이런 말을 했어요. ‘홍대앞은 대안문화가 자발적으로 생성된 곳으로 한국의 하위문화 상징성을 가지고 있는 곳이다. 지금은 그 색깔이 많이 옅어졌지만, 여전히 그 유산을 지키려는 사람들이 있다. 우리 역시 대안문화를 만드는 공간을 만들고 싶다’고요. 릴리쿰과 저의 실험이 다른 삶에 대한 방식을 실험하는 것이라면, 이 실험이 가능한 공간은 여전히 홍대앞이 아닌가 싶어요. 우리를 가장 잘 드러낼 수 있고, 가장 잘 받아들여질 수 있는 공간이자 대안문화를 만들거나 꿈꾸던 사람들의 심리적인 고향이라는 점에서요. 비록 지금은 많이 퇴색되었지만 전 그게 미약하더라도 이어진다면 의미 있다고 생각해요. 그걸 계속 이어나가야 한다고 생각하고요. 그래서 삶의 전환을 고민하는 사람들에게 자기 기술의 시작을 지원하는 공간이 되려는 우리의 실험이 이곳에서 성공할 수 있기를 바라요.

 

 

<나에게 영감이 되는 무엇>

 

경의선 숲길

굉장히 인공적인 자연인데다 연남동의 젠트리피케이션을 부추기는 큰 요소이긴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도시 한복판에 아름답게 조성된 산책로를 걷고 있으면 그 자체로 휴식이 된다. 근처에 살고 있는 탓에 아침이나 밤에도 종종 산책로를 걸으며 몸을 풀거나 머리를 식히곤 한다.

 

책 《누가 나를 쓸모없게 만드는가》

철학자 이반 일리치가 자본주의 사회 시스템이 야기하는 삶의 부조리한 면들에 대해 팩트 폭행을 가하는 글들이 담겨 있다. 《손의 모험》을 쓸 때도 그의 묵직한 말에 기대어 힘을 많이 얻었다.

 

영화, 비 카인드 리와인드(Be Kind Rewind)

미셸 공드리의 2008년 작품. ‘뭐야 이 엉터리 같은 스토리는’으로 시작해서 ‘뭐야 나도 저 장면으로 들어가고 싶어’로 끝났던 영화. 너무 큰 영감을 받은 나머지 영화 속 내용을 프로젝트로 재현했다. 이후 허접허섭 블록버스터를 표방한 릴리쿰의 ‘야매 공작’이 시작되었다.

 

릴리쿰 스테이지

자랑이지만 없는 게 별로 없는 공간. 작지만 만드는 데 필요한 것들이 촘촘히 담겨 있다. 고민을 담아 직접 가꾸고, 활동을 통해 커뮤니티가 만들어지는 공간만큼 영감을 주는 공간이 있을까. 누구에게나 열려 있는 공간이니 일단 와보시길.

 

 

글_임은선 스트리트H 에디터

사진_신병곤 포토그래퍼

기획_STACCATO H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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