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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아하는 것들을 따라서 – Gaga77page 이상명

좋아하는 것들을 따라서 – gaga77page 이상명

Post Series: 스타카토 H 피플

 

 

상수동에서 책방 gaga77page를 운영하고 있는 이상명입니다. 가가77페이지, 가가페이지77 뭐든 편하게 읽어주시면 될 것 같습니다. 가가는 가게의 어원이고 77페이지는 책이 보통 200~300페이지 정도라고 한다면, 1/3 정도 되는 분량으로 한 번에 읽을 수 있을 법한 책의 양, 책의 내용을 파악할 수 있는 최소한 분량이라고 생각합니다. 책방이라는 게 마구 티가 나지는 않지만 그래도 책방이라는 제일 중요한 아이덴티티는 놓치고 싶지 않아서 조금은 읽기 어려운 이름이 되었습니다. 근데 이런 게 뭐가 중요하겠습니까. 예쁘면 됐죠.

 

책방 주인이 되어보고 싶다는 건, 누구나 한 번쯤 마음에 품어봤음직한 꿈이 아닐까 싶습니다. 저도 그렇습니다. 아주 어렸을 때부터 내 책방을 할 거라고 생각했는데, 그게 지금이 아닐 이유가 없었습니다. 그 당시 하던 일이 있었는데 경영상의 이유로 폐업하게 되고 시간이 붕 떴습니다. 그토록 기다려왔던 휴식이었고, 아무것도 안 해도 되는 시간이었는데 정말 아무것도 안 하면 안 될 것 같더라고요. 쉬지 않고 뭔가 다른 걸 할 것 같았거든요. 그래서 다른 걸 할 바에는 내가 하고 싶었던 걸 하자가 된 거죠. 그렇게 책방을 열게 되었습니다.

 

 

홍대가 아닌 다른 지역은 생각하지도 않았습니다. 제게 홍대는 뭐랄까, 밝은 에너지가 있는 공간입니다. 그 밝음이 태양 같은, 사람이 뭘 하지 않아도 자연히 얻을 수 있는 밝음이 아니라 누군가가 끊임없이 뭔가를 돌려야 유지되는 밝음, 그런 밝음이었습니다. 그게 홍대를 찾는 사람들의 젊음일 수도 있고, 이곳을 이루는 사람들의 에너지일 수도 있고, 뭐 이유는 다양하겠죠. 전 그 에너지가 좋았던 것 같습니다. 물론 지금은 그 동력이 많이 약해지고 있지만 말이죠. 그게 향유하는 사람들의 문제는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자본주의 논리가 더 큰 것 같습니다. 예전에는 하고 싶은 걸 해도 유지할 수 있었는데, 이제는 하고 싶은 걸 하면 건물주 말고는 돈을 버는 사람이 없으니까요. 개성 있고 색깔 있는 가게들이 다 없어지고 그 자리를 프랜차이즈 가게들이 채우고 있고, 갑자기 돈맛을 본 건물주들은 지나치게 많고, 계산을 할 수밖에 없는 사람들도 너무 많습니다.

 

이렇게 말하니 열심히 책방을 운영한 사람처럼 느껴지네요. 지금은 그래도 사람들이 많이 다니는 서교동 쪽으로 이전했지만 작년까지만 해도 여기 책방이 있는지, 입구는 어디에 있는지 알 수 없는 곳에서 책방을 운영했죠. 왜 그랬냐고요? 책방은 제게 노는 공간, 쉬는 공간이었기 때문입니다. 사람들은 아무것도 안 하고 있는 걸 쉰다고 생각하는데 아무것도 안 하는 게 아니라 스트레스 받지 않고 뭔가를 할 수 있으면 저는 그게 쉬는 거라고 생각합니다. 제가 좋아하는 책도 실컷 보고 공연도 하고 전시도 하고 하면서 제가 놀면서 쉴 수 있는 공간으로 책방을 열게 되었다고 이야기하는 게 더 맞는 표현 같습니다.

 

 

사실 그렇게 따지면 전 인생의 대부분을 쉰 셈입니다. 좋아하는 일만을 선택하며 살아왔으니까요. 7살 때 부모님이 이런 말을 하셨습니다. “네가 하고 싶은 걸 하면서 살아라. 대신 어떤 걸 하든 그 결과는 네가 책임져야 한다.” 그래서 전 늘 하고 싶은 일을 하면서 재미있게 살아왔습니다. 그 좋았던 일이 싫어지고 귀찮아지면 그만뒀고, 다른 재미있고 좋아하는 일로 옮겨 갔습니다. 교원대를 졸업하긴 했는데 그 전에 전자공학과, 영화학과를 다니다가 자퇴를 했었고, 군대 장교를 한 적도 있고, 짧지만 교사로 지냈던 적도 있습니다. 광고회사를 다녔고, 광고 관련 프리랜서로 꽤 오래 일하기도 했습니다. 책방을 하기 전 마지막 이력은, 남성 수제화 브랜드를 운영하는 사람이었죠. 전형적이지도, 일반적이지도, 그렇다고 연관성이 있지도 않은 경력들 속에는 좋아하는 일을 좇아온 제가 있습니다.

 

쉬면서 하자고 시작한 책방인데, 생각보다 일이 커졌습니다. 돈을 많이 버는 건 아닌데, 솔직히 돈은 못 법니다. 책방 하는 3년 동안 모아둔 돈을 다 써서 지금은 장기를 팔아야 할지도 모른다는 조금은 무서운 농담을 만나는 사람들에게 하니까요. 책방이 제 예상과 달리 많이 알려진 편이라 지금 기로에 서 있습니다. 진지하게, 본격적으로 해볼 것인가, 지금처럼 놀면서 할 것인가. 경제적인 부분을 고민한다면 진지하게 운영해야 하는데, 그렇게 되면 스트레스를 받게 될 테고 스트레스를 받으면 책방을 운영하는 일이 싫어질 텐데, 책방이 싫어지긴 싫으니까요. 아직은 조금 더, 이곳에서 재미있게 쉬면서 놀면서 책방을 운영하고 싶습니다. 이 즐거운 일상이 계속 이어졌으면 좋겠습니다.

 

 

<나에게 영감이 되는 무엇>

 

상수역

gaga77page 말고 가장 많이 가는 곳이다. 보통 출퇴근을 지하철로 하니까 말이다. 퇴근하고 상수역 에스컬레이터 타고 내려갈 때, 반대편에서 올라오는 사람들을 본다. 누군가에게는 이곳은 약속의 장소고 만남의 장소다. 또 누군가에게는 유흥의 장소이고 놀이의 공간이다. 이들과 달리 지친 표정으로 올라오는 사람들도 있다. 일터에서 집으로 돌아오는 사람들이다. 그들에게는 이곳이 집이다. 나처럼 가게를 운영하는 사람들에게는 이곳은 전쟁터이기도 하다. 이렇게 다양한 표정과 다양한 옷차림의 사람들을 보면서 상수역, 홍대에 대해 생각해본다.

 

《망한여행사진집》

독립출판물 작가 중에 정말 좋아하고 천재라고 생각하는 사람이 세 명이 있다. 더쿠 작가, 우세계 작가, 그리고 홍유진 작가다. 《망한여행사진집》이라는 이 3000원짜리 책은 홍유진 작가가 여행하면서 정말 망한 여행 사진만 모아둔 책이다. 정말 재미있다. 최근에 이 책의 개정판이 나왔는데 보면서 웃다가 한 방 세게 맞았다. 작년에 돌아가신 홍유진 작가의 아버님 뒷모습이 개정판에 등장한다. 그 뒷모습이 담긴 사진 위에 ‘아부지 살아계실 때’라고 덤덤하게 적혀 있다. 이렇게 본인의 상처를 꺼내놓을 수 있을 정도가 되었으니, 이제 홍유진 작가는 조금 덜 아프게 된 걸까. 평생 잊을 수 없겠지만 그 아픔을 꺼내놓을 수 있을 정도로 성장한 홍유진 작가에게 박수를 보내고 싶다. 소중한 존재를 소중하게 느끼게 해주는, 가볍지만 가볍지만은 않은 책이라 꼭 말하고 싶다.

 

영화 <이터널 선샤인>

유명한 영화라 무슨 설명이 필요할까 싶지만 미셀 공드리 감독의 영상미가 쩌는 영화. 짐 캐리가 기억을 지우는 장면이 기억에 남는다. 좋았던 기억마저 지워지려는 순간, 필사적으로 기억이 지워지지 않도록 노력하는데, 가끔 이런 생각을 한다. 이 공간이 누군가에게 좋은 기억만을 남기는 공간이었으면 좋겠다는 생각. 그러려면 내가 잘해야 한다.

 

신해철

인생에 있어, 최고의 뮤지션을 뽑으라고 한다면 무조건 신해철이다. 내 인생에 가장 큰 영향을 준 그를 무슨 말로 표현할 수 있을까. 그는 천재이고 신이다. 신해철처럼 살 수 있다면 정말 멋진 인생일 것이다.

 

 

글_임은선 스트리트H 에디터

사진_신병곤 포토그래퍼

기획_STACCATO 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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