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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자인은 나의 언어. 디자인으로 알고 싶은, 하고 싶은 이야기들에 대해 – 이수향 디자이너

디자인은 나의 언어. 디자인으로 알고 싶은, 하고 싶은 이야기들에 대해 – 이수향 디자이너

Post Series: 스타카토 H 피플

 

 

파이카 스튜디오에서 하지훈 디자이너와 함께 활동하고 있는 그래픽 디자이너 이수향입니다. 최근 들어 ‘꾸준함’에 대해 많이 생각해보고 있어요. 언젠가 독립해서, 내 디자인 스튜디오를 열겠다는 꿈은 지금 파이카 스튜디오를 하고 있으니까 이룬 셈이고, 그 다음 목표에 대해 생각해보는 거죠. 디자이너로서 꾸준히, 오래 작업하는 것. 그래서 할머니가 될 때까지 디자이너로 활동하는 모습을 자주 상상해봅니다. 어떻게 하면 디자이너로 오래오래 작업할 수 있을까요.

 

 

그림 그리는 것을 좋아해서 어릴 때부터 미술과 관련된 일을 하겠다고 생각했어요. 입시 미술을 준비해서 미대에 합격했는데, 학교는 기대했던 것과는 달랐어요. 고민을 많이 했죠. 그래서 휴학도 했는데 그때 그래픽 디자인을 만난 거죠. 그래픽 디자인은 아주 사소한, 작은 것 하나에도 의미가 있잖아요. 레이아웃에도 의미가 담겨 있고요. 그런 게 너무 매력적이었어요. 점 하나를 찍어도 그냥 찍는 게 아니라 생각하고 생각한 것을 시각적으로 표현한다는 게 너무 좋았죠. ‘그래픽 디자인을 하겠다, 난 이거다’ 이렇게 생각했던 것 같아요. 배우면서도 너무 재미있었어요. 신세계를 만난 기분이었죠.

 

졸업을 하고 회사에 취업하고 나서는… 제가 어떤 단체에 소속되는 걸 안 좋아하더라고요. 매일 아침 일찍 일어나 출근하는 것도 너무 괴로웠고요. 사실 꼭 회사에 소속되어야 디자인을 할 수 있는 건 아니잖아요. 그때 직장 동료였던 하지훈 디자이너가 함께 스튜디오를 해볼 생각이 없느냐고 하더라고요. 입사한 지 한 달 만에 직장을 그만두고 둘이 함께 파이카 스튜디오를 차려 활동하기 시작했습니다. 파이카 스튜디오는 저에게 있어서 디자인으로 세상에 말을 걸게 된 첫 시작인 거죠. 전 좀 내향적인데요. 제가 말하고 싶은 메시지를, 제 목소리를 대신해 디자인에 담아 세상에 발신했던 것 같아요. 디자인이라는 언어로 사람을 만나고, 관계를 맺어나가면서 내가 어떤 디자인을 해야 하는지도 분명해졌습니다.

 

전 연극, 영화, 음악 등 문화예술부터 여성, 인권, 동물, 환경 같은 사회정치 분야에도 관심이 많아요. 보통은 이런 주제와 관련된 모임이나 활동이 많은데 성격상 그런 모임을 만들거나, 활동에 참여하거나, 목소리를 내는 걸 잘 못해요. 그래서 디자인으로 목소리를 내는 것 같아요.

 

 

둘이 스튜디오를 하겠다고 회사를 그만뒀는데, 그래서 스튜디오를 열었는데 아무도 저희가 스튜디오를 연 걸 모르잖아요. 그래서 함께 일하고 싶은 곳들에게 저희 포트폴리오를 메일로 보냈어요. 그 중 한 곳이 성평등한 사회를 지향하는 단체인 ‘한국여성의전화’입니다. 그렇게 여성폭력 인식개선 연중캠페인인 <그 일은 전혀 사소하지 않습니다>를 함께 할 수 있었어요. 인연이 이어져 여성인권영화제 디자인 작업도 진행했고요.

일을 하면서 제 세상이 확장되는 것을 느껴요. 으레 알고 있다고 생각한 것들도 막상 알고 보면 모르는 것투성이일 때가 많죠. 새로운 사실과 다양한 사람들을 알아가면서 몰랐던 걸 배워나가는 과정은 디자인의 재미 중 하나인 것 같아요.

 

저에게 홍대가 딱 그랬던 것 같고요. 전 초등학교부터 대학교까지 대전에서 보냈어요. 2015년, 홍대에서 일하면서 서울을 마주하게 되었으니 저에게 홍대는 ‘서울’ 그 자체예요. 처음 홍대에 왔을 때는 제가 이방인 같았어요. 낯선 문화에 위축되기도 했고요. 하지만 그건 제가 잘 몰랐기 때문이란 걸 얼마 지나지 않아 알게 되었죠. 홍대는 알면 알수록 새롭고 신기하고, 무엇보다 ‘멋진 사람들’이 많은 곳인 것 같아요. 자기 소신대로 자신의 삶을 살아가는 사람들이 멋지게 느껴졌습니다. 그동안 홍우주사회적협동조합, 서교예술실험센터, 행화탕 등 홍대 앞에 위치한 문화예술 단체들과 함께 일을 했는데, 만나는 사람마다 ‘이 사람들은 진짜다’라는 느낌을 받아요. 직업도 성격도 스타일도 모두 다르지만 자기 소신을 가진, 내면이 단단한 사람들이라는 공통점이 있죠. 일로 만난 사람이 아니어도 그래요. 홍대 앞에서 스스로 명함 만들기, 포스터 제작 등 워크숍을 진행하면서 만난 사람들-직장인, 예술가, 작가, 뮤지션, 작곡가 등-모두 자신만의 생각과 언어로 세상에 메시지를 전달하는 사람들 같아요. 이런 사람들과 함께 있으면 나도 더 멋지게 나의 디자인을 해나가야겠다고 다짐하게 됩니다. 멋진 사람들이 홍대 앞에 유독 많은 건, 아마 서로에게 좋은 영향을 주는 사람들이 많기 때문이지 않을까요. 저 역시도 누군가에게 좋은 영향을 줄 수 있는 디자이너라면 좋을 것 같아요.

 

 

<나에게 영감이 되는 것>

 

경의선숲길

작업실로 출근하는 길. 내가 늘 걸어다니는 길이다. 파이카 스튜디오는 가좌역 근처에 있다. 나는 고양시에 사는데 작업실에 가기 위해서는 홍대입구역에서 내려 경의선숲길의 끝자락까지 걸어가야 한다. 30분 정도 걸리는 이 길을 걷는 것이 좋다. 개인적으로 걷는 걸 좋아하기도 한다. 걷다 보면 복잡했던 머릿속이 비워지면서 어느 순간 정신이 맑아지는 순간이 온다. 그 순간에 다시 채워지는 생각들과 감정들이 있는데 그 순간을 무척 좋아한다. 꼭 출근길이 아니라 고민이 많은 날에도 이 길을 걷는다. 오래 걸을 때는 1시간 이상도 걷는다. 물론 걷는다고 고민이 해결되는 건 아니지만 고민 때문에 무거워진 마음, 그 마음을 옥죄고 있던 생각들은 조금은 내려놓게 되는 것 같다. 계절을 따지진 않지만 하늘이 맑고 날씨가 좋을 때 걸으면 가장 기분이 좋다. 워낙 인기 있는 곳이라 어느 구간에서는 관광객이 많고 사람들로 북적거리는 구간이 있는데 그런 모습도 나에겐 하나의 멋진 풍경이다.

 

Prokofiev Dance of the Knights

집중이 잘 되는 순간에 영감도 따라온다고 생각한다. 나는 작업을 할 때 집중도를 높이기 위해 주로 음악을 듣는 편이다. 대중가요, 팝송, 재즈 등 분야를 가리지는 않는데 최근에는 클래식을 듣는다. 이 곡은 내가 최근에 가장 많이 듣는 곡으로 디자인 작업을 하면서 집중할 때 듣고 있다. 우연히 듣게 되었는데 듣자마자 ‘아, 이거다!’ 싶었다. 개인적인 감상평을 하자면 우울하면서도 웅장하다고 해야 할까, 전체적인 구상이 좋다. 도입 부분부터 마음을 확 잡아끄는 강렬한 매력이 있다. 거대한 대서사시가 펼쳐질 것만 같은 박력 있고 힘찬 피아노 소리로 시작하는 그 부분이 가장 마음에 든다. ‘자, 이제 본격적으로 작업을 시작해볼까’라는 생각을 갖게 한다.

 

다이어리

손으로 글을 쓰거나, 떠오르는 생각을 적거나, 그림을 그리는 걸 좋아한다. 일정을 정리하고 메모를 하고, 손을 움직이다 보면 떠오르는 이미지가 많다. 그래서 나는 다이어리를 쓴다. 대학교 3학년 때부터 쓰고 있다. 매년 해가 바뀌면 1년을 나와 함께 보낼 다이어리를 구입하는 게 나만의 소소한 연례행사이기도 하다. 가장 좋아하는 브랜드는 미도리의 트래블러스 다이어리다. A5보다 폭이 좁은 세로 형태의 다이어리인데 사이즈도 그렇고, 촉감도 딱이다.

 

인스타그램

다양한 사람들이 모여 있고, 서로 소통하는 곳을 보다 보면 새로운 이미지도 떠오르고, 아이디어도 확장되는 것 같다. 그런 곳 중 인스타그램이 단연 최고라고 생각한다. 주로 디자인, 그래픽 디자인과 관련된 이미지들을 본다. 심심할 때마다 수시로 보는 편이다. 개인 계정도 있다. 하지만 인스타를 좋아하는 것만큼 개인 활동은 잘 안한다. 집에서 기르는 고양이 두 마리 사진을 가장 많이 올리는 것 같다.

 

 

글_권민정 스트리트H 객원에디터

사진_신병곤 포토그래퍼

기획_STACCATO 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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