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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키라라는 키라라’라는 슬픈 정의를 벗어던지고 – 뮤지션 키라라

‘키라라는 키라라’라는 슬픈 정의를 벗어던지고 – 뮤지션 키라라

Post Series: 스타카토 H 피플

 

 

전자음악가 키라라입니다. 예쁘고 강한 음악이란 모토로 활동한 지 5년이 되었습니다. 저는 전자음악가란 소리의 텍스처에 신경을 많이 쓰는 사람들이라고 생각해요. 음악을 구성하는 요소가 리듬, 화성, 멜로디라 한다면 어떤 음악가들에게는 어떤 음을 어떻게 구성할 것인가가 중요하겠지만, 전자음악가들에게는 그 소리가 어떤 질감인가, 어떻게 퍼져나가는가 같은 소리 자체의 생김새가 중요한 것이고 그것이 주된 음악을 만드는 것이겠죠.

 

까마득한 옛날부터 자연스럽게 음악을 시작하게 된 것 같은데, 기억을 거슬러 올라가보면 그 시작에는 클래지콰이가 있습니다. 우연히 클래지콰이의 1집을 듣게 되었고, 이런 음악이 뭔지, 어떻게 하면 이런 음악을 만들 수 있는지 찾아보니 컴퓨터 음악이란 세계가 있더라고요. 그때부터 컴퓨터 앞에 앉아서 뭔가를 만들기 시작했습니다. 만약에 그때 제가 포크음악을 들었다면 지금 저는 기타를 잡고 있을지도 몰라요. 음악을 해야겠다는 욕구가 있었을 때 마주한 것이 클래지콰이와 컴퓨터라서 전자음악가인 키라라가 된 거죠. 이제 와서 전자음악이란 무엇인가를 고민하고 있어요. 전자음악의 매력이 무엇인지 계속 찾아보고 싶어요.

 

 

그렇게 혼자 집에서 배우지 않고 음악을 만들다 보니까, 사람들이 보통 음악을 만들 때 사용하는 프로그램이 아닌 보편적이지 않은 프로그램을 이용해 음악을 만들기도 했고, 저는 믹스가 뭔지도 모르고 믹스를 하고 있었더라고요. 그저 찍어서 나열하는 수준의 음악을 만들고 있었던 것 같습니다. 20살 때 상상마당에서 캐스커 이준오 선생님께 강의를 들으면서 내가 하고 살던 것이 어떤 작업인지도 알게 되었고, 제가 만들어내는 것들도 전자음악적인 형태를 갖추게 되었던 것 같습니다. 또 그 강의에서 처음으로 아슬 같은, 전자음악가 친구들도 사귀게 되었죠.

 

다른 음악가들은 어떻게 음악을 만드는지 궁금했던 것 같아요. 어떤 악기와 프로그램을 사용해서 음악을 만드는지, 어떻게 사람을 섭외하고, 어느 스튜디오에서 녹음을 하는지 등 그들이 만든 음악의 정서도 궁금했지만, 음악을 만드는 기술, 워크플로에 대해서 더 묻고 싶었어요. 이런 이야기를 스튜디오 밤과낮 친구들과 술을 마시면서 하다가 유튜브 채널 ‘아니 어떻게 이렇게’가 시작되었습니다. 우리가 잘 아는 인디신 음악 말고 R&B나 블랙뮤직 같은 음악세계도 담고 싶었는데 그걸 하지 못한 게 제일 아쉽지만 의미 있는 작업이었던 같아요. 음악을 하려는 사람들에게도 도움이 될 것 같고 만드는 저희 또한 즐겁고 재미있게 만들었습니다.

 

 

저는 활동하면서 제가 카테고라이징이 되는 음악가이고 싶다는 생각을 늘 했던 것 같습니다. 주위에 음악가 동료들도 많고 사랑도 많이 받았지만 제가 속한 신에서 희귀한 전자음악가라는 정체성, 그리고 저의 남다른 성정체성 때문에 늘 어디에도 소속되지 못한 기분이었거든요. 저는 어떤 특성의 음악가로 분류되어 본 적이 잘 없었어요. 저 같은 사람은 언제나 저밖에 없었어요. 그냥 ‘키라라는 키라라’라는 사실이 가끔 저를 외롭게 만들기도 했어요.

 

최근에는 점점 분노하게 되는 것 같습니다. 제가 어디에도 소속되지 못한다는 것이 어쩌면 수혜일 수도 있다는 것을 깨달은 이후로요. 소위 말하는 이 신을 굴리는 남자 어른들은 절대 제 앞에서 무례하지 않습니다. 모두 나이스하죠. 한마디로 그들은 저에게는 ‘빻은’ 일을 절대 저지르지 않습니다. 젠더가 뭔지도 모르는 그들이 (뭔지 알 필요가 없는 그들이) 어떻게 트랜스젠더에게 빻을 수 있겠어요. 그런데 주변의 다른 음악가 친구들은 이미 너무 많이 옳지 않은 과정으로 누군가에게 대상화되고, 부당한 일도 많이 겪었더라고요. 저는 사람들이 뭐라 하기도 어려운 트랜스젠더 전자음악가라서 사람들 사이에서 힘든 일도 당하지 않고 편하게 활동해왔던 거죠. 어디에도 속하지 못해서 외롭다고 생각하는 동안, 이게 반면에 얼마나 수혜인지를 미처 생각하지 못했어요. 그것을 깨달은 순간 이제는 분노하고 싶어졌어요. 더 이상 내 외로움에만 집중하고 싶지 않아요. 저의 외로움에 집중하는 대신 무지하거나 잘못을 한 사람들에게 화를 내고 싶어졌습니다. 왜냐하면 저는 더 이상 외롭지 않거든요. 제 친구들, 특히 많은 여성 뮤지션들에게 너무 많은 지지와 연대를 받았고, 제가 받았던 지지와 연대를 이제는 돌려주어야 할 때라고 생각해요. 함께 할 수 있는 것들을 하고 싶습니다.

 

 

<나에게 영감이 되는 무엇>

 

한잔의 룰루랄라

더 이상 홍대에 있을 필요가 없다고 생각했었다. 한잔의 룰루랄라가 없어졌기 때문이다. 한잔의 룰루랄라는 뮤지션들에게 어떤 의미가 있는 공간인지 다들 잘 알 거라고 생각한다. 거기에는 내 모든 것이 있었다. 룰루랄라가 내게 남긴 음악, 사람, 트라우마, 감성, 정신 등등 나를 이루는 대부분의 것이 한잔의 룰루랄라에서 나왔다. 비록 한잔의 룰루랄라가 문을 닫은 지 1년이 넘었지만, 여전히 나의 많은 것은 한잔의 룰루랄라에서 나온다.

 

포크음악가들

너무 아름다운 사람들이다. 그들이 만드는 음악도 역시 그렇다. 내 주변에 있는 싱어송라이터, 포크음악가들과 그들의 음악은 나에게 많이 위로가 되었으며 실제로도 많은 시간을 같이 보낸 친구들 동료들 선배들이 되어주었다. 그들이 나와 연대해주었던 것 같다. 그들과 함께한 최근의 시간들이 굉장히 소중하다. 그들의 영혼을 존경하고 사랑한다. 내가 언젠가 가사가 있는 음악을 만들게 된다면 분명 그것은 모두 그들 덕분이다.

 

사진집 《wake up》

락스미스바이쇼쇼타입이라는 회사가 낸 사진집이다. 나는 이 책을 17살 때 샀고, 내가 가진 그나마의 전자음악가적 에티튜드는 아마 이 책을 통해 형성되었을 것이다. 락스미스바이쇼쇼타입은 일본의 음악가 프리템포(FreeTEMPO)를 한국에 소개한 회사이기도 하고, 정말 멋진 일들을 많이 했다. 한국에 지금과 같은 EDM신이 형성되기 이전부터 이미 정말 멋진 공연이나 파티를 기획했던 레이블이었다. 그 순간들이 담긴 사진집으로, 어린 시절의 나는 이 책을 보며 전자음악신에 대한 환상을 키웠다. 락스미스바이쇼쇼타입이라는 회사도 이제는 없고, 내가 음악가를 하고 있는 지금, 주변에 락스미스의 흔적을 찾아보기도 어렵지만, 내가 바로 그 흔적처럼 느껴질 때가 있다. 나는 분명 이 책 때문에 댄스음악을 만드는 사람이 되었다.

 

나의 정체성

영감을 받았다고 표현해도 될지 모르겠지만, 내가 음악을 하는 중요한 이유이자 원동력은 분명 내 정체성에서 온 것이기 때문에 말하지 않을 수 없을 것 같다. 내가 음악을 만드는 행위는 결국 내 성정체성과 관련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것이다. 내가 살아가기 위한 발버둥 같은 거다. 음악으로 내가 하고 싶은 말을 표현해야 했고, 표현하지 않으면 나는 살 수 없었다. 나는 정치적일 수밖에 없다. 세상 그 누구라도 나와 같은 상황과 성정체성이었다면 나처럼 싸우는 삶을 살 수밖에 없을 것이라고 확신한다. 나를 표현하는 수단인 내 음악은 당연히 나의 생각들을 담아낼 수밖에 없다고 생각한다. 내 정체성이 나에게 영감을 준다. 너무 당연해서 이렇게 말하는 게 이상하게 느껴지지만 말이다.

 

 

글_임은선 스트리트H 에디터

사진_신병곤 포토그래퍼

기획_STACCATO H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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